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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딸 둔 미등록 이주여성노동자의 죽음

등록 :2017-11-12 18:56수정 :2017-11-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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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 제조업체에서 10년째 일한 타이 출신 20대 여성
“경찰 단속” 거짓말에 한국인 50대 남성 따라나선 뒤 피살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 24만명…“단속·추방 중심 정책 한계” 
타이 출신 이주여성노동자 추티마(왼쪽)가 생전에 고향집에 두고 온 딸과 찍은 사진.
타이 출신 이주여성노동자 추티마(왼쪽)가 생전에 고향집에 두고 온 딸과 찍은 사진.
추티마(29)는 착하고 성실한 딸이었다. 11년전,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돕겠다며 18살 나이로 타이의 시골 마을에서 한국으로 돈 벌러 들어왔다. 경기 안성의 한 자동차부품제조업체 한 곳에서만 10년을 일했다. 정식 고용허가제가 아닌 관광비자로 입국해 눌러앉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이른바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고 부지런했다. 매달 100만원 가량을 꼬박꼬박 고향집에 부쳤다. 빠듯한 생활비 일부를 빼곤 월급의 거의 전부였다. 일은 힘들었고,마음은 늘 불안했지만, 일터에선 밝고 상냥했다.

지난 1일 오전, 전날부터 한 야근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와 쉬려던 참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국인 직장 동료 김아무개(50)씨는 “불법체류자 단속반이 나온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주겠다”고 했다. 단속에 걸리면 곧장 추방이다. 다급해진 추티마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또다른 한국인 박아무개씨에게 전화로 사정을 알린 뒤 김씨를 따라 나섰다. 이 통화를 끝으로 추티마의 휴대전화가 꺼졌다. 추티마의 삶도 함께 끊겼다. 김씨의 말은 거짓이었다.

나흘 뒤인 5일 새벽 3시께, 추티마는 멀리 경북 영양군의 한 야산에서 돌로 맞아 숨진 채 경찰 수색대에 발견됐다. 피의자 김아무개씨가 뒤늦게 안성경찰서에 범행을 자수한 뒤였다. 그는 성폭행을 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추티마의 아버지 삼릿(56)은 한국에서 날아든 비보가 믿기지 않았다. 청천벽력이었다. 타이의 언론들은 추티마의 피살 소식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삼릿이 서둘러 한국에 도착한 시각은 9일 오전. <한겨레>는 이날 서울에 있는 주한타이대사관에서 그를 만났다. “중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농사 일을 거들던 착한 딸이었어요. 11년 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에 일하러 간다고 할 때 찬성했는데 늘 미안하고 고마웠지요. 날마다 휴대폰 화상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10월 31일 통화한 뒤로 며칠이나 딸에게선 전화가 없고, 딸의 직장에선 출근하지 않은 채 연락이 끊겼다며 되레 소식을 물어왔다. “불안한 생각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딸의 친구가 소식을 알려왔어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왜 내 딸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추티마에겐 몇해전 헤어진 타이인 남자 친구와의 사이에 딸 하나가 있다. 13살 중학생 딸은 지금까지 엄마를 보러 한국에 딱 두 번 왔다. 아버지 삼릿은 11일 딸의 주검이 발견되고 안치된 경북 영양으로 향했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을 마친 딸의 주검 앞에서 가난한 농부 아버지는 눈물만 흘렸다. 눈을 감은 얼굴은 11년 전 고향을 떠나올 때의 곱던 모습 그대로인데,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태국 일간지 <타이 래스>가 추티마의 피살 사건을 보도한 지면. “김치의 나라에서 태국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다”라는 제목이 달렸다.
태국 일간지 <타이 래스>가 추티마의 피살 사건을 보도한 지면. “김치의 나라에서 태국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다”라는 제목이 달렸다.
이주노동자단체 관계자 등은 미등록 외국인의 취약한 처지와 노동시장의 인력수요 현실을 무시한 단속·추방 중심의 불법 체류자 정책이 ‘추티마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불법 체류 적발은 곧 추방’으로 인식되다보니, 단속을 피해 무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월보를 보면, 지난 9월말 기준으로 국내의 ‘불법체류 외국인’은 23만9595명에 이른다. 그 대다수는 체류 기한을 넘겨 비자가 만료된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삼릿의 타이어 통역을 도운 경기 화성이주노동자쉼터의 한상훈 활동가는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를 낮춰보며, 특히 일터에서 여성이주자들에 대한 성범죄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국내에 수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와 있는 현실을 반영해, 그들의 체류 조건을 완화하고 수용하는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조영관 변호사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은 “우리 출입국관리법에는 자진 출국을 유도하기 위한 출국 권고와 명령(제67, 68조) 규정이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한번 단속되면 곧바로 추방되다보니,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외국인들이 경찰 단속에 위축될 수밖에 없고, 주변의 부당한 요구에도 ‘신고 위협’에 저항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출국 권고나 명령을 받고도 그 기한을 넘겨 체류하면 추방한다거나, 체류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컨대,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2014년, 미국에서 최소 5년을 거주한 불법 체류자 중에서 시민권이나 합법적 체류 권한을 가진 자녀를 둔 부모이면서 전과가 없고 세금을 낼 경우 추방을 유예하고 합법적으로 일자리도,얻을 수 있도록 조건부 영주권을 주는 이민개혁을 행정명령으로 시행한 바 있다.

조 변호사는 “미등록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단속을 하더라도 곧장 추방이 아니라 ‘출입국 행정의 비구금화 원칙’에 따라 해당 외국인이 최대한 자율적으로 출국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한국어 능력과 성실성 등 일정 자격을 갖추면 합법적 체류 자격으로 재등록을 해주거나 비자를 전환해주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출입국 행정이 자꾸 사람을 단속하고 내쫓는 방식이 아니라 취약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들을 법 안으로 포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권침해나 범죄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18661.html#csidxed904e7dd2636ff9d6a59032886ee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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