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꿈 다룬 다큐 '풍경' … 재중동포 장률 감독

수정 2013.12.16 00:39

일상에선 이방인 일터에선 주인 …
잘 모르는데 극영화 만들 순 없어
모든 꿈은 고향·그리움과 연결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다큐멘터리 ‘풍경’의 장률 감독. 그는 “이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이 앞으로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어떤 풍경이라도 유심히, 따뜻하게 봐줄 수 있게 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사진 정경애(STUDIO 706)]
1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풍경’은 어느새 우리네 삶의 한 ‘풍경’이 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삶을 껴안는다. 재중동포 장률(51) 감독의 작품으로 이제껏 이주노동자를 다룬 어떤 TV프로그램, 영화보다 진한 울림을 준다.

감독은 이주노동자 14명을 찾아가 그들의 일터와 집의 풍경을 담은 뒤, 단 하나의 질문만으로 이야기를 끌어낸다.

 “당신이 한국에서 꾼 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간 마음을 닫았던 이들도 가슴을 열어 보인다. 마흔 무렵 뒤늦게 영화에 입문한 장률 감독은 ‘망종’(2005) ‘중경’(2007) ‘두만강’(2009) 등 경계인의 이야기를 묵직하게 그려왔다.

 -이주노동자들에게 꿈을 묻는다기에 비전을 물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잘 때 꾸는 꿈이더라.

 “앞날에 대해 묻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런 건 스스로 말하고 싶을 때 말해야 하는 거다. 매일 힘들게 일하면서 타향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을 불러놓고 비전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잠 잘 때 꾸는 꿈에 대해선 자연스럽게 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큐멘터리는 처음인데.

 “지난해 겨울 전주국제영화제 측에서 찾아왔다. 세 나라의 감독이 같은 주제로 각자 단편을 만드는 ‘삼인삼색’ 프로그램에 참여해달라고 했다. 주제는 ‘이방인’인데 극영화든 다큐멘터리든 관계없다고 했다. 그때 늘 마음속에 있던 풍경 하나가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우리 눈앞에 풍경처럼 보이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극영화로 만들면 교만하게 보일 것 같았다.”

 -극영화보다 어려웠던 점이라면.

 “너무 많았다. 시나리오 없이 정서만 갖고 진행하는 거라 스태프들도 근심이 많았다. 무엇보다 거리를 지키는 게 중요했다. 인터뷰 대상들에게 함부로 질문하지 않는 것, 한 순간이라도 강자처럼 보이지 말 것. 그렇게 조금씩 다가갔다.”

 -목공소, 축산시장, 비닐하우스, 공장 등 육체노동의 현장을 지긋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노동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지던데.

 “노동현장을 너무 길게 찍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그렇지만 그 현장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가만 보니 이 분들은 오히려 노동하지 않을 때 더 우울해 보였다. 일상에선 이방인이지만 일터에서는 이들이 주인이라 그럴 거다. 존경심을 갖고 카메라를 들이밀었더니 아름다운 영상이 나왔다. 노동의 아름다움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14명의 꿈 중 가장 애잔한 사연은.

 “처음에는 모든 이야기가 다 슬펐다. 그런데 편집하는 동안 그걸 잊게 됐다. 모든 꿈은 고향과 그리움과 관련돼 있었고, 슬픈 듯하지만 그 안에 따뜻함도 있었다. 모든 게 연결된 느낌이랄까.”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다 연세대 특임교수(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학)로 한국에 정착한 지 2년째다. 정착해서 바라본 한국은 어떤가.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을 왔다 갔다 했다. 그때는 잘 모르겠더라. 그러다 한 1년 사니까 알 것 같았고, 다시 반년이 더 지나니까 더 모르겠다. 하하.”

 ‘풍경’은 CGV 압구정·인디스페이스, 아트하우스 모모 등 주요 예술독립영화관과 다양성영화관에서 상영된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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