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법은 있으나 돈이 없다 [2013.10.07 제980호]
[표지이야기] 기획연재 국민과 난민사이 ① 난민들의 한국살이 7월1일 시작된 ‘아시아 최초’의 난민법… ‘예산 없다’는 이 유로 지원 신청도 받지 않고, 출입국 공무원의 자의적 기 준으로 신청 거부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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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난민법이 시행됐다. 법무부는 ‘아시아 최초 독립된 난민법 시행, 난민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가능’이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내놨다. 지원보다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통제’와 ‘관리’를 받아왔던 국내 난민들의 처지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처럼 보였다.

절반에게만 열린 난민지원센터

난민법의 내용은 크게 난민 인정 절차와 처우 규정으로 나뉜다. 난민 인정의 결정적 자료가 되는 면담조서 작성 절차를 강화한 것은 긍정적으로 꼽히는 대목이다. 난민심사관 면담 과정에 신뢰 관계자의 동석을 허용하고 전문적인 통역을 지원하기로 했다. 신청자 본인이 나중에 면담조서를 열람할 권리와 조사 과정의 녹음·녹화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도 새로 생겼다. 공항 등 출입국항에서 난민 인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바뀐 대목이다.

새로운 법에는 난민의 생존을 위한 권리도 새겨졌다. 고국의 정치적 박해로부터 급박하게 빠져나온 난민들에겐 새로운 사회에서 삶을 시작하기 위한 초기 지원이 필수적이다. 6개월 안에 난민 심사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땐 난민신청자가 취업 허가를 받을 수 있게 하고, 그때까지 생계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커다란 진전”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 지난 9월25일 인천시 영종도에 세워진 난민지원센터(출입국지원센터)를 한 지역 주민이 바라보고 있다. 법무부는 9월2일 센터를 개관하려 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문을 열지 못했다.엄지원
난민법 시행일로부터 3개월 가까이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에선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묻어나고 있다. 애초에 지원을 의무화하지 않고 담당자의 재량에 맡긴 것이 화근이다. 법은 “(법무부가 난민 신청자의) 취업을 허가할 수 있다”거나 “생계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만 정하고 있다. 실제로 7월1일부터 법이 시행됐지만 법무부는 “올해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 신청도 받지 않고 있다. 예산이 없어 정부가 마련하지 못한 것은 또 있다. 면담을 기록하기 위한 녹음·녹화 장비다. 처우뿐 아니라 난민 인정 절차도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법이 통과된 뒤 시행까지 1년6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도 예산을 마련하지 못했다고만 하는 것은 아쉽고 무책임한 행정”이라고 말했다.

대신 정부는 예산을 한곳에 쏟아부었다. 인천 영종도에 연면적 2천평(6612m²) 규모의 건물을 짓는 데 133억원이 투입됐다. 동시 수용 인원 100명이 3개월씩, 연간 총 400여 명의 난민이 지낼 수 있는 난민지원센터(출입국지원센터)다. 국내 난민신청자가 이미 연간 1천 명이 넘는 것을 고려하면, 절반이 넘는 난민신청자에겐 입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9월 중 예정됐던 센터 개청은 그나마 지역 주민의 반대 여론에 가로막혀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다.


법 시행일 기준으로 나뉘는 희비

법 시행 뒤 최초로 난민 인정 신청을 하는 이들에게만 법을 적용하도록 한 부칙 제2조는 위헌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난민 인정 절차뿐 아니라 처우 규정도 지난 7월1일 이후 난민신청자에게만 적용돼 “헌법상 평등권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부칙대로라면 법 시행 직전인 지난 6월30일 난민 인정을 신청한 사람은 난민법 적용 대상자가 아니다.

‘아시아 최초’가 아니라 ‘세계 최초’라도 법의 정의는 스스로 구현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 시행 주체인 법무부와 현장 공무원의 의지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법이 바뀌었지만 공항에서의 난민 인정 신청을 출입국 공무원이 거부한 일이 몇 차례나 있었다. 난민의 권리 중 가장 핵심적인 ‘강제송환 금지’의 원칙마저 출입국 공무원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무시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