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은 시끄럽고, 동남아인은 게으르다?" 한국은 인종차별 위험국가

  • 팀 알퍼 디자인하우스 기자

  • 입력 : 2015.01.16 10:57

    한국이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반(反)유대주의 국가란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나 역시도 얼마 전에야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 유대인 차별 반대 단체인 ADL(Anti-Defamation League)가 2014 반유대주의 국가에 관해 진행한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조사 결과를 인용한 뉴스 보도도 이어졌다. 외교 소식지 ‘디플로마트(the Diplomat)’는 ‘한국은 왜 이토록 반유대주의가 강한가?’라는 제목의 보도를 한 바 있으며 보다 최근엔 ‘태블릿(Tablet)’이란 유대계 미국 잡지에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비한국인 기자가 관련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런 뉴스는 유대인으로서 오랫동안 한국에 살아온 내겐 다소 놀라운 것이었다. 유대인이란 이유로 한국에서 불쾌함을 겪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11년엔 영국의 유대계 일간지 ‘주이시 크로니클(The Jewish Chronicle)’에 ‘한국인은 왜 유대교에 열광하는가’란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의 집착에 가까운 ‘탈무드’ 선호 현상에 대해 쓴 글이었다. 탈무드는 유대교의 고대 율법과 전통을 모은 책이다.

    따라서 내게 한국이 반유대주의 국가 상위국에 오른 ADL의 조사 결과는 상당히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이 혼란스러움을 풀기 위해 나는 ADL의 조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ADL에 따르면 한국인 53%가 반유대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일본(23%)의 두 배를 넘는 수치며 중국(20%)보다도 훨씬 높은 정도이다. 라오스 같은 국가에서 반유대주의 수치는 0.2%에 불과했다.

    내가 살던 영국의 경우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게 좋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반유대주의자들과 부딪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유대인들은 튀지 않으려고 한다. 유대인이란 사실로 유별을 떠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한국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대교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내가 유대인이란 사실을 밝히면 사람들은 대개 이런 말을 했다. “유대인은 똑똑하잖아요. 당신도 머리가 좋겠군요!”

    이번엔 ADL의 질문지를 살펴봤다. ‘유대인들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너무 많은 권력을 쥐고 있다’(한국인 59%가 이 주장에 ‘그렇다’를 선택),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자신들이 더 잘났다고 생각한다’(한국인 62%가 ‘그렇다’를 선택), 조사대상자들이 이 같은 일련의 주장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밝히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그제야 내 맘 속 의문이 풀렸다. 한국인들은 유대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유대인을 정형화하길 좋아하는 것이었다. ADL의 설문조사는 한국 응답자의 인종 선호도를 드러내기보단 특정 민족을 정형화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 이 같은 사실을 깨닫고 일단은 안심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 역시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정형화는 인종차별 행위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을 대할 때 정형화하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한국이 점점 더 다문화사회가 돼가고 있는 지금 비한국인에 대한 정형화는 사라져야만 한다. 인종에 따른 정형화가 심한 사회일수록 인종차별주의를 통제하기가 더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가 그랬고, 2005년 프랑스 파리와 호주 시드니에서 일어난 인종 폭동의 경우도 그랬다. 1991년 폴란드 소도시 므와바(Mlawa)에서 폴란드 청년 갱들이 집시마을을 부분적으로 파괴해버린 사건도 결국 인종 정형화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정형화는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누구라도 정형화의 덫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현대 심리학자들은 ‘인간은 원시적 과거에서부터 서로를 정형화했다’고 여긴다. 마음속으로부터 조직 내 집단과 그외 집단을 구분해 왔으며 조직 내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조직 외 집단을 외부인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직관적으로 사람들을 분류한다. 조직 외 집단조차도 말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쉽고 빠르게 분류해내 내게 위협이 될 것인지 여부를 가려낼 필요성을 느낀다.

    최근 이민인구와 국제결혼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한국은 단일민족 사회로 여겨지고 있다. 때문에 ‘한국인은 내 집단, 비한국인은 외 집단’이라는 공식이 편리하게 통용된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비한국인들과 결혼해 혼혈 아이를 낳기 시작하면서 이토록 단순했던 공식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인종에 대한 사고 전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그게 위험해지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적 사고에 기인한다. 사람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도 내부 집단에 속해 있으면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외부 집단에 있는 사람들은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 머제이퍼 셰리프(Muzafer Sherif) 캐롤린 셰리프(Carolyn Sherif) 부부가 주도한 심리학자 연구팀이 11세 소년들의 하계 캠프에서 행태 조사를 했다. 소년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경쟁하게 한 후 그 결과에 대해 물었더니 각 팀은 줄곧 자기 팀이 다른 팀보다 더 잘했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90%의 소년들이 가장 친한 친구는 자기가 속한 팀에 있는 누구라고 했다는 것이다. 팀으로 나누기 전 그들은 나중에 다른 팀에 속하게 된 친구가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했었다.

    실험이 계속될수록 두 집단 사이의 관계는 나빠져 갔다. 한 팀이 다른 팀의 깃발을 태우자 그 팀은 다른 팀 소년의 숙소를 습격하여 침대를 뒤집고 소유품을 훔치는 것으로 보복했다. 이 두 팀은 점점 더 서로 사이가 험악해져 연구자들은 물리적으로 이들을 갈라놓아야 했다.

    그런데 고정관념은 단순히 ‘우리 집단이 너희 집단보다 낫다’는 태도보다 더 복잡하다. 한국 사람들이 특정 인종 집단에 대하여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하더라도 내게는 그들이 타자에 대해 긍정적인 고정관념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ADL의 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인이 유대인을 본받아야 할 본보기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유대인은 노벨상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그들처럼 더욱 성공적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한국에 사는 9년 동안 이 비슷한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TV에 나오는 한국인·백인 부부는 언제나 행복하고 유쾌한 듯 보이며, 가벼운 토크쇼에 나와서 농담을 하는 모습이 주로 비쳐진다. 이에 비해 한국·동남아시아 부부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무거운 다큐멘터리인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불행에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인·백인 부부는 인구학적으로 지극히 소수이다. 한국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80% 이상의 비한국인 배우자들이 중국,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몽골에서 왔다. 이들 중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TV 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비록 흑인 비한국인은 한국에서 소수집단이지만 흑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은 대단히 눈에 띄는 결과를 낳는 것 같다. 미국 언론 ‘애틀랜타 블랙스타(Atlanta Blackstar)’는 2014년 한국을 ‘흑인이 여행하기에 나쁜 8대 국가’로 꼽았다. 미국 잡지 ‘바이스(Vice)’는 2014년 6월 ‘남한은 고용 면에서 대놓고 인종차별적’이라는 제목으로, 영어 교사로 백인보다 흑인이 채용되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바이스’의 기자는 “교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문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인종차별을 겪는다”며 한국 중학생의 말을 인용한다. “한국 학생들은 흑인 선생님보다는 백인 선생님을 더 좋아해요. 백인 선생님이 더 깨끗하고 발음도 좋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채용 광고에서는 ‘백인’ 혹은 ‘동포’여야 한다는 문구를 서슴지 않고 쓰며 간혹 동성애자 지원은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기도 한다. 서구에서 만일 이런 광고를 냈다면 그 회사는 재판소에 가서 엄청난 벌금을 내겠지만, 그보다 먼저 어떤 웹사이트나 잡지도 그렇게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게 흔한 일이다.

    흑인에 대한 개인적 위생이나 발음에 관련된 근거 없는 고정관념은 단순히 정보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흑인과 직접 만나는 일이 없으므로 주로 언론에 비친 모습을 보고 생긴 고정관념이라 할 수 있다. 랩 비디오든 할리우드 영화든 대개 흑인을 긍정적으로 조명하진 않는다.

    한국에서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온 인종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인은 ‘시끄럽고’ ‘사업에서 믿을 수 없으며’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한국인을 종종 만난다. 한편 동남아 사람들은 ‘느리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는데, 동남아시아인은 교육과 사업에서 노력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많은 것 같다.

    최근 유럽 경제 위기 동안 나는 한국 사람들이 PIGS 국가(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 대해 험담을 하는 걸 듣고 놀랐다. “남유럽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안 하고 경제도 부패했으니 결국 재정적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지.” 이런 말을 북유럽 사람들, 특히 영국인이나 독일인에게서 들었다면 별로 놀라지 않았을 텐데, 한국처럼 멀리 떨어진 나라에도 이런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한국에 사는 비한국인들이 정말 놀라는 것은 한국인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고정관념화하기를 좋아한다는 것보다는 그들이 스스로를, 그것도 종종 부정적 방식으로 고정관념화하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및 판교 공연장 사고 이후 많은 한국인이 한국의 ‘안전불감증’을 불평했다. 안전성 관련 사건이 2014년 뉴스를 도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만일 다른 나라의 뉴스가 한국이 ‘안전불감증’에 걸렸다고 비판했다면 정말 인종차별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2014년 한국 신문에는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불평하는 기사들로 가득 찼었다.

    며칠 전 우리 동네의 아는 어르신과 동네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굉장한 속도로 인도를 달려갔다. 그 어르신은 나를 보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이상한 사람들이야.” 그러자 나는 한국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종종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내가 비한국인이니까 이런 말을 할 텐데, 그렇다면 그들은 나와 함께 있을 때는 항상 한국과 서구를 무의식 속에서 비교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인들끼리도 이런 얘기를 늘 할지 모른다. 어쨌든 한국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불평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한 친구가 내게 민병철 박사가 쓴 ‘어글리 코리안 어글리 아메리칸’이라는 책을 줬다. 그 책은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의 문화적 차이에 대하여 가벼운 유머감각으로 쓴 것이었는데, 그 책 내용 중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한국인을 일괄적으로 일반화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인은 토론에서 이야기를 잘 안 한다’ ‘한국인은 업적이나 능력보다는 연륜을 가장 중시한다’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불친절하다’ 등등. 물론 웃기자고 쓴 책이긴 하지만, 그리고 나도 토론에서 말을 별로 안 하는 한국인도, 여자에게 불친절한 한국인도 봤지만,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하거나 아주 신사적인 한국인도 보았다.

    “한국인은 성질이 급해” 혹은 “한국인은 참을성이 없어”라고 말하는 한국인은 그게 고정관념이라는 것, 즉 한국인의 행태를 희화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놓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고정관념화하는 것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고정관념화하는 것도, 한국인들에게는 득이 될 게 없는 행동이다. 한국인이든 비한국인이든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편견을 버린다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개인으로 보지 않고 생각도 없는 ‘민족 떼거리’처럼 말하기 시작하면 사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양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라는 말을 쓰면서 같은 한국인을 고정관념화하거나, “당신은 한국 문화를 몰라” 혹은 “한국에선 이래야 해”라고 비한국인에게 말할 때는, 여기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을 가지라고 부추기는 셈이 된다. 비한국인들도 자기들끼리 “한국인은 참 뻔뻔해” “한국인은 남녀차별이 심해” 혹은 “한국인은 참을성이 없어”라고 늘 불평하는데, 이건 나쁜 버릇이다. 한국에 사는 비한국인들이 한국인에 대해 인종적인 일반화를 한다면 그들도 한국인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하면 안 된다. 그건 양날의 칼이다.

    동유럽에서의 집시에 대한 불신은 집시는 더럽고 교육받지 못했으며 정직하지 않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 집시 인구가 늘어가는 동유럽에서 경제가 악화되면 이 고정관념은 재빨리 인종적 혐오감으로 바뀌어 집시가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고 공격을 받는다. 매년 동남아시아인과 결혼하는 한국인이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으며 그 나라들로부터 오는 이민노동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동남아시아인이 게으르고 교육받지 못했다는 고정관념이 팽배해 있다가는 언젠가 이것이 더 심한 인종차별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인종 간 폭력으로 번질 수도 있다. 2011년 한국의 이민자 합동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이민노동자의 80%가 직장에서 욕을 먹은 적이 있으며, 27%가 신체적인 공격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14%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행동할 때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기다릴 때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고정관념을 없앨 것인가? 서구가 답을 줄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 그리 많지는 않다. 한 가지 해답은 어떤 회사든 인종에 기초한 결정을 대놓고 할 수 없도록 법제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전체 사회가 고정관념은 나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한국 언론은 이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퍼뜨려야 하며 정부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이 정도가 서구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과거에 인종 문제로 끔찍한 실수를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서구사회에서 고정관념이 여전히 팽배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서구사회의 법률은 그런 고정관념을 드러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진정한 답을 찾으려면, 우리는 아까 그 심리학자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내부 집단, 외부 집단 체계를 부수려면 외부 집단을 내부 집단의 일부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다문화 인력을 가진 한국의 큰 회사들은 한국인과 비한국인이 같은 프로젝트를 협력해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다른 인종 집단에 속한 아이들과 학교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느 공장 혹은 직장에서 인종 문제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주장이 나오면 그곳의 책임자를 교육해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책임자가 감독관의 입회하에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아서 아론(Arthur Aron) 등이 2004년 ‘유럽 사회심리학 평론(European Review of Social Psychology)’지에 실은 논문은 ‘자신 속에 타자(他者)를 포함시킨다’는 생각을 소개하고 있다. 외부 집단 성원에 대해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도록 하는 길을 찾고 ‘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생각과 관심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상아탑 속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추상적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다문화 한국을 만들고자 한다면 정말 이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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