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여성의날] "이주여성, '애낳는 기계' 아닙니다"

[the L][인물포커스] 위은진 변호사 인터뷰…"사람을 도구로 보는 정부 이주민 정책 문제"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어요. 혼인취소소송에서 출산경력과 사실혼 경력은 혼인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거든요. 혼인취소가 된다는 것이 그동안의 판결이었죠."

지난달 22일 대법원은 의외의 판결을 내렸다. 국제결혼으로 만난 부인이 결혼 전 성폭행을 당해 출산했던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더라도 '혼인 취소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1심과 2심의 혼인취소와 위자료 지급 결정을 뒤집는 판결이었다. 법무법인 민의 위은진 변호사는 이 베트남 여성의 소송을 맡았다.

"아동성폭행 당해 출산결혼전 알려야 한다? 2차 피해 만들어"

베트남 여성 A씨와 남편은 지난 2012년 베트남에서 국제결혼 중개업자를 통해 만났다. 혼인 후 A씨는 한국으로 왔지만, 결혼 다음해부터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A씨의 출산 사실은 시아버지와의 재판 과정에서 알려졌다. 시아버지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이 사실을 안 남편은 A씨를 상대로 혼인취소 소송을 냈다.

"처음에는 (A씨의 승소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성폭행으로 인한 출산인데다가, 한국에서도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중 피해자인데 부당하다는 의견이 많았죠. 법의 한계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베트남 소수민족 사회에서 약탈혼 풍습이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는 사례가 유엔에 보고돼 있다는 사실이 전환이 됐어요."

2003년 당시 13살이던 A씨는 축제날 납치돼 3일간 성폭행을 당했다. 축제가 열린 마을에서는 결혼을 위해 여자를 납치하는 약탈혼 풍습이 있었다. 성폭행으로 임신을 한 A씨는 자신을 납치했던 남성과 수개월 함께 살았지만,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도망쳐나왔다.

"미성년자가 성폭행을 당해 출산을 한 사건인데 고지 의무가 있을까를 생각을 하게됐죠. 성폭행에 의한 출산인데 이를 알려야 하는가 특히 아동성폭행 사건이잖아요. 2차 가해가 생긴다는 주장이 가능했어요. 소송을 진행할수록 확신이 들었어요."

1심과 2심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대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번 판례는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어요. 앞으로 같은 피해를 당한 여성을 구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되겠죠."

위 변호사가 처음 이주여성 법률지원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부터다. 이주여성법률지원단을 만들면서 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법률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이주여성법률지원단 소속 변호사들은 2주에 한번씩 이주여성인권센터에 나가 하루 2~4건씩 법률 상담을 해주고, 필요한 경우 소송 등 법률구조까지 지원하고 있다.

"성폭행 당해도 참아야 하는 이주여성…제도는 있지만 비현실적"

이주여성은 성폭행 사건에 취약하다. 일을 하다 성폭행이나 추행을 당해도 신고하기가 어렵다.

"성폭행 사건이 인정되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 머무를 수 있도록 비자 연장을 해주기는 해요. 하지만 더이상 다른 곳에 취업을 할 수가 없게 돼요. 고용주가 성추행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신고하면 '감히 사장을 신고하는 이상한 애'가 돼버리는 거에요."

이주민을 위한 법과 제도는 '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법은 이들이 피해자가 됐을 때 대응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성폭행 피해자가 되면 임시비자를 주는데, 이 비자로는 일을 할 수는 없어요. 법은 체류 보장은 해주는데 생계 지원은 안해줘요. 생계 지원을 할 수 없다면 일이라도 해서 먹고 살게 해줘야 하는데 취업은 안된다고 하는거에요. 법은 있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문제가 있죠."

특히 정부의 이주 정책에 대해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시각'을 지적했다. 노동자는 '싼 값'에 사용하는 노동력으로, 여성은 '출산'을 위한 도구로 전제하고 정책을 짜나가고 있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이주민을 사람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이주노동자는 싼 임금으로 사용하다 본국으로 돌아가길 바라죠. 숙련되면 임금도 올라가고 한국에 살고싶은 생각이 들 수 있으니 단기간 사용하다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하는거에요. 여성은 저출산 대책으로 출산을 위해 필요해서 수입해오는 것처럼 보여요. 이들도 '인간'이라는 인식이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태어나는데…제도 마련 필요"

위 변호사는 이주 아동을 둘러싼 문제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봤다. 이주민간, 또 이주민과 한국인 간 결혼이 늘면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는데, 제도는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모가 불법체류자거나 문제가 있을 때 아이를 등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미등록 상태였다가 걸리면 법적으로 강제추방을 할 수밖에 없어요. 학교를 다닐 수는 있지만 입학을 받아주는 것은 학교장의 결정에 달려있기 때문에 실제 학교를 다니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에요."

위 변호사는 "물론 부모의 책임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면서도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당장 내쫒는 것만이 답일까요. 아동은 아동 자체로만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일정 체류기간을 줘서 학업과 취업을 할 수 있게 하고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왜? 사람은 평등하니까…"

한국 사회는 이주민에 그리 관대하지 않다. 특히 불법체류자 문제에서는 더 그렇다. 불법체류자의 자녀가 한국에 살며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왜 세금을 불법체류자에게 써야 하느냐"는 반박이 당장 나온다. 위 변호사는 당연하면서도 현재 한국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답을 말했다.

"사람은 평등하잖아요. 사람은 자신이 살고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잖아요. (우리도) 우리나라에서 살고 싶은데 못살 수가 있죠. 그럼 다음 선택지로 살 곳을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주여성 노동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온 경우가 많아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까, 자발적 선택이라면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부는 '이주민은 사기꾼', '잠재적 범죄자'로 이들을 바라본다. 실제 이주민이 저지르는 범죄가 없지 않다. 남편의 재산을 챙겨 도망가는 이주민 여성이 있고, 돈을 훔치고 폭행을 일삼는 외국인 노동자도 있다.

"이주민을 지원하는 센터에서 그곳 소장들조차 '왜 한국 남성들은 안도와주고 이주민 여성만 도와주느냐 한국 남성을 도와달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세요. 당황스럽죠. 아무리 좋은 제도도 악용하는 사람은 항상 있어요. 모두가 선일수는 없어요. 하지만 악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좋은 제도를 없앨 수는 없는 것처럼 일부를 보고 전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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