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대법원 ‘이주노조’ 판결에 8년 직무유기…고심 흔적 없어”
신종철 기자 | sky@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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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6 02: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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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슈=신종철 기자] 대법원이 25일 서울ㆍ경기ㆍ인천 이주노동자 노조에 대해 합법화 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며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고 혹평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 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서울ㆍ경기ㆍ인천 이주노동자 노조가 “노조 설립을 인정해 달라”며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낸 노동조합설립신고서반려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2007두4995)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


민변(회장 한택근)은 논평을 통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고용노동부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3조,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한 헌법 제6조,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별대우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5조, 인종차별금지를 금지한 노조법 제9조 등에 비춰볼 때, 위 판결은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민변은 “그런데 위 판결이 나오기까지 대법원에서만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지적했다.

2005년 4월 24일 서울ㆍ경기ㆍ인천지역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던 이주노동자 99명은 지역별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를 설립하고, 같은 달 5월 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그해 6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이주노조 임원 및 조합원 일부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 및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므로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이주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을 출입국관리법상 체류자격이 없다는 임의적 상황에 따라 차별하는 처분은 위법 · 무효이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민변은 “2006년 2월 7일 1심인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이태종 부장판사)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원고 청구를 기각했으나, 2007년 2월 1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법적근거가 없는 것으로 위법하므로 취소한다고 판결했다”고 설명했다.
민변은 “2007년 2월 23일 고용노동부가 상고해 대법원에서 심리가 시작된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장기 미제사건 기록을 갱신하며 무려 8년 동안이나 계류돼 왔다”며 “김황식 전 대법관, 후임 양창수 전 대법관을 거쳐 권순일 현 대법관에 이르기까지 주심 대법관만 3명을 거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과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며 “내국인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하여 노동조합 가입자격이 제한되거나, 이미 가입된 노동조합의 실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체류자격이 없더라도 자신의 노동을 제공해 생계를 유지하는 한, 헌법상 노동3권이 제한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제323차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에서 채택된 제374차 결사의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는 8년째 계류된 이주노조 설립신고 상고심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한국 대법원과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민변은 “대법원의 8년에 걸친 심리 지연으로, 이주노조는 모진 수난을 겪었다”며 “아노아르 후세인(방글라데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미셀 카투이라(필리핀) 4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주노조 주요 임원들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표적단속 돼 강제추방 당하거나, 입국이 거부됐다”고 밝혔다.

민변은 “그럼에도 이주노조는 노동조합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주노동자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창립정신으로 끈질기게 싸워왔다”며 “우리 모임은 이주노조의 지난 10년 동안의 헌신적인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깊은 연대의 마음을 표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며 “대법원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았다”고 혹평했다.

민변은 “한국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를 8년 동안 외면했다”며 “이는 인권의 보장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사법부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할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고 쓴소리를 냈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고 “이 사건은 2007년 접수됐으나, 그동안 충실한 심리를 위해 자료 수집 및 연구 조사, 제반 사정 반영 등에 노력을 기울인 관계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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