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품, 고작 이만큼이다

이주노동 관련 이슈에 적극적 반응과 움직임 보이지 않는 이자스민 의원, 그런 그가 “한편으로 안타깝고, 한편으로 아쉽다”는 이주노동자들

제1059호
 
2015.04.29
등록 : 2015-04-29 17:02
필리핀에서 온 존스 갈랑이 목에 팻말을 걸었다. ‘8년째 대법원 에 계류 중!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합법적 지위를 즉각 인정하라!’

지난 4월2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 갈랑은 경기도 오산에서 1시간 넘게 차로 달려왔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1시간 남짓 1인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선교사인 그는 경기도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대법원에는 서울경기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이 노동부를 상대로 ‘노조 설립신고 반려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이 계류 중이다. 2007년 2월 서울고법은 “이주노조는 합법”이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노동부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 뒤로도 8년이 흘렀다. 그런데 대법원은 마냥 시간만 끌고 있다. 이주노조를 지지하는 이주민단체 활동가들이 돌아가며 매일 점심시간마다 대법원 앞 1인시위에 힘을 보태는 까닭이다.

이주노조 설립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다투는 소송이 8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존스 갈랑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이 4월2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판결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자스민 의원과 같은 필리핀 출신인 그는 “한국 사람들이 아직 이주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느낀다. 김진수 기자

이주노조 허용하지 않으려는 꼼수?

2005년 4월24일, 이주노조는 민주노총 강당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한 역사적 순간이다. 노조 조합원들은 대부분 2003~2004년에 걸쳐 1년 넘게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 산업연수생제도 대신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토끼몰이식 단속과 강제추방이 진행되자, 그동안 숨죽였던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임금을 떼먹혀도, 목숨의 위협을 느낄 만큼 강압적인 단속을 피하다가 다쳐도, “부당하다”고 악 소리 한번 내지 못했던 이들이다. 노동자로서의 기본권 따위는 언감생심. 그랬던 그들이 천막농성의 힘을 모아 노조 설립까지 이뤄냈다.

같은 해 5월3일, 이주노조는 노동부에 노조 설립신고를 냈다. 나흘 뒤 노조 초대위원장인 아노아르 후세인이 표적단속으로 강제 연행됐다. 한 달 뒤 노동부는 노조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노동부는 조합원들의 이름, 생년월일, 국적, 외국인등록번호 또는 여권번호를 내라고 요구했다. 불법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조합원인지를 솎아내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노조는 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출입국관리법상 미등록 체류자의 노동3권을 보장할 수는 없다”며 노동부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불법체류 외국인이라 해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로 이주노조가 승소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혐오와 멸시 대신, 인간이자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부터 줘야 한다는 법의 준엄한 명령이었다.

‘불법’ 신분이라고 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가. 인권을 모르겠는가. 그럴 리 없다. 국제인권단체들도 한국 정부와 대법원에 “그래선 안 된다”는 뜻을 전했다. 국제앰네스티, 국제노총, 국제노동기구(ILO), 유엔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 등은 한목소리로 ‘이주노동자들에게 합법, 불법 여부와 관계없이 노동조합을 구성하고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변한 게 없다. 이주노조는 여전히 ‘불법’ 지위이고, 처음 노조 설립신고서에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던 6명은 모두 추방당하거나 제 발로 한국을 떠났다. 이주노조의 변호를 맡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는 “노조 설립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놓으면 국제적 비난이 쏟아질 테니까, 대법원이 골치 아픈 사건을 미뤄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적이 생기면 달라지는 이주민들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헌법 제6조 2항)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은 여러 층위로 나뉜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처럼 경외의 대상이 되는 엘리트 외국인 남성, 이자스민 의원처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주민 여성, 그리고 범죄를 일으키는 ‘짐승’ 취급을 받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등등. 같은 이주민이더라도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결혼이주 여성은 사회 전체가 품어안아야 할 소외계층이지만, 노동력을 제공해 경제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사회적 배제의 대상일 뿐이다. 같은 이주노동자 안에서도 피부 색깔, 학력, 성별, 출신국에 따라 또 다른 계급이 나뉜다.

“한국 국적을 얻은 결혼이주민들이 같이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무시하기도 한다. 국적이 생기는 순간, 이주민들은 누구보다 보수적인 애국자가 된다. 심지어 이주지원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결혼이주 여성에게 ‘그렇게 조금 떼인 임금은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합원도 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네팔 출신으로 노조위원장이 된 지는 3년이 됐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국회에 이자스민 의원을 찾아간 적이 있다. ‘고용허가제법’이 개정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퇴직보험금을 출국 뒤 14일 안에 받을 수 있도록 바뀐 제도의 문제점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이주노동자들은 퇴직금을 보험금 형태로 받는데,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한국에서는 돈을 받지 못하게 됐다. 출국하지 않으면 퇴직금을 주지 않을 테니, 불법체류자로 남지 말란 엄포다.

그는 이자스민 의원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보좌관에게 관련 자료를 넘겼지만 별다른 후속 조처가 뒤따르지도 않았다. “이자스민 의원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들었다. 어차피 새누리당이 이자스민을 비례대표로 데려간 건 이주민 표를 얻을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투표권이 없으니 관심 밖인 거다.”

이에 대해 이자스민 의원 쪽은 “여성가족위원회는 3년째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고 밝혔다.

이자스민 의원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양가감정’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자스민 의원을 ‘얼굴마담’이라고 부르면서도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이 얼마나 깔아뭉개고 무시할지 상상이 된다”며 안쓰러워했다.

“이자스민 의원이 한편으론 안타깝고 한편으론 아쉽다. 다문화 정책의 상징이란 이유만으로 엄청난 악플의 대상이 된다. 이주아동이나 이주여성의 문제 등에선 의미 있는 활동도 많이 한다. 하지만 이주노조 합법화에 대해 목소리를 낸 적은 없다.” ‘이주공동행동’ 활동가인 정영섭씨의 말이다. 그는 한국 정부의 다문화 정책이 둘 사이의 깊은 골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결혼이주 여성은 한국인으로 동화시켜야 하는 대상이다. 애도 낳아주고 돈도 벌어주고 시부모 봉양도 하니까.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조금 일을 시키다가 내보낼 대상에 불과하다. 통제하거나, 사회에서 배제해버린다.”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은 우리

존스 갈랑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필리핀 출신이라 그런지 이자스민 의원에게 더 애틋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카사마코’라는 필리핀 이주노동자공동체와 ‘엠브레이스’라는 경기도 권역 내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갈랑 소장은 “이자스민 의원이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 있다 하더라도 새누리당 의원이라는 한계상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자스민 의원을 3번 만나봤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아직 이주민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이주민들도 목소리를 내기엔 응집력이 약하다.”

정치인 이자스민이 서 있는 자리, 10년째 이주노조가 벗어나지 못한 ‘불법’이란 지위. 딱 여기까지다. 2015년, 한국 사회가 이주민을 끌어안은 ‘품’은 고작 이만큼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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