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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사각지대 농촌이주노동자…
왜 농민은 ‘악덕 사업주’가 됐나
[미디어 현장] 문주현 참소리 (전북인터넷대안언론) 기자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소쿤(가명)씨는 2012년 6월부터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소재 한 미나리 밭에서 지난 1월 말까지 일하다 한 동료와 함께 쫓겨났다. 사실상 해고였다. 설 연휴 첫날인 1월 30일부터 3일 동안 쉬고 싶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소쿤씨의 쉬고 싶다는 말에 농장주는 연휴 기간 밥도 제공하지 않았다. (소쿤씨와 동료는 농장주가 제공한 숙소에서 기숙하며 일을 했다) 3일 치 임금을 받지 않을 테니 쉬겠다는 이들의 말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식사에도 적용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인근 시장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3일이 지나고 2월 2일, 소쿤씨와 동료는 일을 하기 위해 미나리 밭으로 출근했지만, 농장주는 “너희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하지 말라”며 일감을 주지 않았다. 물론 식사도 제공하지 않았다.

이 같은 일은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농장주는 바로 태국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결국, 3일 저녁 소쿤씨와 동료는 멀리 경기도 안산의 이주노동자쉼터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쉼터는 이들의 사정을 듣고 노동부 전주지청에 체불임금 및 장시간 노동 등 최저임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해당 사업장에 대한 조사 진정을 넣었다.

2월 25일, 약 25일 만에 노동부 전주지청에서 농장주, 이주노동자 관리인과 소쿤씨와 동료는 그 일이 있은 후 첫 대면을 했다. 농장주 측은 이주노동자들이 무단으로 사업장을 이탈했다며 돌아오지 않을 경우,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소쿤씨와 동료가 요구한 사업장 변경 신고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은 폭행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사업주의 허가 없이는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 이를 어길 경우, 불법체류자가 된다.

설날에는 다른 한국인들처럼 쉬고 싶다고 말한 소쿤씨가 노동부 전주지청에서 밝힌 노동시간은 월 308~319시간이었다. 하루 11시간씩 28일을 일한 셈이다. 아침 6시에 나와 해가 떨어지는 저녁 6시까지 그는 미나리 밭에서 있었다. 2012년 6월 한국에 들어와 농장에서 일한 그는 작년 6월과 7월을 제외하고 월평균 300시간 이상 일했다.

소쿤씨와 농장주가 맺은 근로계약서에는 오전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시간에 월 2일 휴일, 하루 휴게시간 150분으로 되어 있다. 도저히 믿기 힘든 노동 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2012년 6월부터 11월까지 월 110만 원, 12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월 120만 원, 2013년 8월부터 12월까지 월 150만 원을 받았다. 2012년만 놓고 봐도 그는 최저임금의 76% 수준의 임금을 받은 셈이다.

이런 소쿤씨의 의견(장시간 노동과 임금체불)에 대해 노동부 전주지청 담당 근로감독관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소쿤씨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으며, 농업의 특성상 근로시간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이런 근로감독관 소견의 배후에는 근로기준법이 자리하고 있다. 이 법 63조를 보면 ‘농림, 축산, 양잠, 수산 사업의 경우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은 적용받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를 토대로 농장주와 농업 이주노동자 관리인(브로커)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근로감독관도 사견을 전제로 소쿤씨의 진정서만 놓고 볼 때, 최저임금법 위반 및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담당 근로감독관은 소쿤씨가 주장하는 300시간 이상의 노동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진정서에 노동시간 등을 기록했지만, 이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1월 1일부터 29일까지 하루하루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 쉬는 시간을 적어서 제출하라고 하얀 백지를 건넸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은 하얀 백지에 자신들의 출·퇴근 시간을 적어 제출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동일했다. 분 단위까지 적어 정확히 제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진정 건은 한 달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조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노동부 자체 인사이동과 맞물려 다른 근로감독관으로 진정 건이 이관됐다. 그러면서 초조해지는 건 소쿤씨와 동료이다. 이들은 벌써 1달 넘게 일을 하지 못한 채, 안산의 쉼터에서 머물고 있다. 농장주가 사업장 변경에 합의해주지 못해 구직활동을 할 수도 없었다. 이 기간 그와 동료가 쓴 돈은 200만 원을 넘어가고 있다.

   
▲ 문주현 참소리 (전북인터넷대안언론) 기자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 105곳, 160여 명의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응답자들의 월평균 근무시간은 약 284시간이었으며, 33%는 월 300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자료는 당시 노동부에 전달됐다.

그러나 소쿤씨의 사례를 놓고 볼 때, 인권위 자료가 노동부 내에서 어느 정도 소통되고 있는지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사례는 단지 소쿤씨로 끝나지 않는다. 소쿤씨가 노동부 전주지청에 방문한 날에도 3명의 이주노동자가 비슷한 진정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나고 노동부 군산지청에도 이와 비슷한 진정서가 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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