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7년째 ‘이주자 노조 인정여부’ 판결 뒷짐

등록 : 2014.02.17 20:07수정 : 2014.02.18 13:04

“불법체류자라도 노조 설립 가능”
항소심 판결뒤에 고용부가 상고
그사이 역대 위원장들 추방 당해

민변 “정치적 판단 하는건지 의심”
대법쪽 “기일은 재판부 권한” 말뿐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경기도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의 이주노동자 착취 사건이 사회문제가 된 가운데, 대법원이 7년째 처리를 미루고 있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설립 관련 판결에 새삼 눈길이 쏠리고 있다. 노동계는 이번 사건도 노조가 있었다면 단체교섭권 행사 등을 통해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대법원이 하루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 사건은 대법원이 지난해 1월 심리기간 2년을 넘긴 장기 미제 사건을 발표하면서 행정사건 중 계류기간이 가장 긴 사건으로 꼽은 바 있다.


 7년 전인 2007년 2월 서울고법 행정11부(재판장 김수형)는 서울·경기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주노조)에 노조 설립신고 필증을 내주지 않는 서울지방노동청의 결정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1심 재판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이태종)는 “불법체류자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으나, 서울고법은 “불법체류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급료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이상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헌법상의 노동권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상고한 뒤 대법원은 7년째 이 사건 판결을 미루고 있다. 이주노조 쪽은 재판 진행과 관련한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채 마냥 기다리고만 있다. 네팔 출신의 우다야(42)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주노동 비상대책위원장은 “7년 동안 깜깜무소식이다. 판결이 나기나 할까. 우리를 노동자로 보기나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 처음 소송을 제기했던 초대 이주노조 위원장 아느와르 후세인부터 6대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까지 모두 강제추방을 당했다. 고법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을 대변해야 할 이주노조엔 7년째 ‘불법노조’ 딱지가 붙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이주노조를 인정하라’고 여러 차례 권고했으나 정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주노조 설립을 위해선) 국내 경제와 사회적 상황, 사회적 합의 등이 (먼저) 있어야 한다”며 이주노조 설립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법무부는 영장 없이도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에 들어가 조사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주노조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노동위원장은 “대법원이 7년이란 시간 동안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법리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늦어지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의 말처럼 판결이 늦어지는 것은 법리적 판단 문제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07년 고법 판결 당시 참여했던 한 법관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용하는 데 큰 의문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에선 기일 운영 자체가 재판부의 권한으로 비공개 대상이다. 심리가 어느 단계인지, 어떤 문제로 선고가 안 잡히는지, 얼마나 기간이 소요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