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은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이주노동자협약)이 채택된 날이지만, 정작 이주민들은 추운 날씨만큼이나 마음까지 얼어붙고 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소중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지만, 이주노동자협약 마저 비준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유엔총회가 1990년 12월 10일 이주노동자협약을 채택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2000년부터 ‘세계 이주민의 날’을 기념하고 있지만, UN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협약에 대한 비준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체류자격별 및 연도별 외국인 입국자 현황'에 따르면 올해 단기취업, 비정규직 취업, 거주, 방문취업 등 체류자격을 목적으로 국내에 입국한 이주민은 234만 7836명으로, 전년대비 103.2%(227만 4931명) 증가했다.
그러나 국내 고용허가제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할 곳을 자율적으로 '이동'하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있다.
이주노동자협약(제25조 1~3항)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급여, 휴식, 건강과 안전조치, 고용관계에 대해 차별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사장이 해고하고 싶으면 해고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빈번한 체불, 장시간 무리한 노동,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 노동조건의 위험성에 대한 개선의지는 '제자리 걸음'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8월 사업장을 변경하려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구인사업장 명단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공문을 배포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는 구인업체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제공받지 못한 채 구인업체로부터 무조건 연락이 오길 기다려야 하는 ‘을(乙)’의 위치에 놓여 있는 처지다.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을 단념하거나 원치 않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 지역의 중소기업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는 A씨(말레이시아)의 경우 근로계약 3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조건이 더 좋은 근로현장으로 이직이 어려운 상황이다.
A씨는 “더이상 체불임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어 이직을 고려했지만, 채용관련 정보를 얻기도 까다롭고 (내가)기업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있지도 못하다”며 “그렇다고 마냥 구인업체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려는 것도 어려워 이직을 포기했다”고 한탄했다.
이처럼 계약기간이 만료된 이주노동자들이 임금 체불 등에 고통받고 있지만, 정작 이직도 쉽지 않아 고충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조진희 외국인복지관 정책실장은 "대부분 이주민근로자들은 임금 체불, 위험한 작업에 대한 부담, 사업주의 폭력 등을 이유로 이직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특히 이들의 요구는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으려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유럽과 같은 선진복지국가처럼 노동허가제 전환을 밴치마킹해 기존에 3년으로 제한돼 있는 계약기간에 대한 규제를 풀고, 이주노동자들도 구직이나 이직에 어려움이 없도록 정책적인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정우 기자 wooloosa@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