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럽, ‘이주의 자유’ 갈등

영국, 이주자 복지혜택 엄격 제한
프·독 가세 조짐에 동유럽 반발

EU “이주 자유, 유럽 시민의 원칙
하나의 시장 포기 아니라면 허용해야”

유럽연합(EU) 내 이주의 자유를 두고 ‘부유한’ 서유럽 국가와 ‘가난한’ 동유럽 국가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시민의 유럽연합 내 이주 제한이 회원국 가입 7년 만인 내년 1월부터 해제될 예정인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실업수당 제한 등 이주자 복지 혜택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나섰다. 프랑스와 독일도 비슷한 정책 의지를 잇따라 밝혀, 28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리는 ‘유럽연합-동부 협력 정상회의’에서 동·서유럽 국가 간에 정면충돌 조짐마저 보인다.

27일 캐머런 총리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시민뿐 아니라 주택보조금이나 실업수당 같은 복지 혜택을 신청하기가 쉽다는 이유로 영국에 들어오려고 생각하는 유럽연합 시민 모두에게, ‘절대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영국 <비비시>(BBC)에 밝혔다.

26일 영국 정부가 이주자 복지 제한 정책을 발표한 직후 논란이 커지자 이를 방어하고 선 것이다. 영국 정부는 실업수당 지급 기한이 최대 99주(약 23개월)이지만, 이주자가 취업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실업수당 지급을 최대 6개월까지로 제한하고, 이주한 직후 석달 동안은 실업수당 신청 자격 자체를 박탈하기로 했다. 노숙하거나 구걸하는 이주자는 곧바로 추방하고 취업 같은 적절한 체류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1년 이내 재입국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새로 입국한 이주자가 주택보조금을 신청할 수 없도록 했다. 아울러 이주민이 낮은 임금으로 일하며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도록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에 대한 벌금을 지금보다 4배로 높이기로 했다.

캐머런 총리는 한발 더 나가 “이주 자유는 소득 격차에서 비롯한 대규모 인구 이동을 촉발할 것”이라며, 유럽연합 회원국이라도 적정 국민소득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이주 제한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움직임은 영국에 국한된 게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연정 정부는 27일 “유럽연합의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국내 정책을 바꿔 이주자가 복지시스템에 들어오려는 이주 동기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도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법 오용을 단속하겠다”며 “이는 프랑스의 사회경제적 기본 뼈대에 대한 위협이므로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독일과 프랑스가 이주의 자유에 대해 영국과 같은 수준의 우려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영국 총리실 쪽은 이주자 복지 혜택을 줄이려는 독일과 프랑스의 움직임이 캐머런 정부 정책에 대한 점증하는 지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은 강력하고 근본적이다. 호세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영국 정부의 정책이 발표된 직후 캐머런 총리에게 전화해 이번 조처가 유럽연합의 법적 기반을 훼손하고 있다며 개인적인 경고를 전달했다. 바호주 집행위원장은 “이주 자유는 유럽연합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연합 고용 담당 집행위원인 라즐로 안드로는 “영국은 하나가 된 시장을 떠나려한다면 그렇게 말해도 좋지만, 남으려고 한다면 이주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며 “캐머론 총리는 자기 몫의 케이크를 맛 볼 자격이 없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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