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농업 노동자, 주 7일 근무 가능” 안내하는 노동부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ㆍ“휴일 없이 일 시킬 수 있고 가산수당은 안 줘도 돼”
ㆍ근로기준법 63조 근거 책자 만들어 상세 소개

“휴일과 휴게시간을 주지 않아도 된다.” “주 7일을 모두 일하게 할 수 있다.” “주 40시간, 하루 8시간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임산부와 연소자도 휴일에 근로시킬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2009년 11월 발간한 ‘농업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관계법령’이란 책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집단수용소’에나 있을 법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불법도 아니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내용들을 정리한 것들이다.

해당 책자는 2750부가 제작돼 농촌지역 주민자치센터 등에 배포됐다. 책자는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발간 목적과는 달리 고용주가 법 테두리 안에서 노동자를 얼마까지 부릴 수 있는지가 주된 내용이다.

l_2013112601003900900299712.jpg
 

책 내용 중 ‘외국인 근로자와의 근로계약’ 부분을 보면, ‘외국인 근로자가 오후 6시만 되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며 일손을 놓아버려 골치가 아프다’는 고용주의 가상 질문에 “6시 이후에도 계약 내용에 따라 근로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연장근로에 대하여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이 나온다.

또 수습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물음에는 “수습근로자는 3개월 미만의 기간에는 예고 없이 해고할 수 있고, 최저임금의 90%만 지급해도 된다”고 알려주고 있다. 15세 이상 18세 미만 청소년과 임산부의 경우에도 농업에 종사할 경우 휴일에 근로시킬 수 있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 농림사업 분야에서는 근로기준법 특례규정에 따라 근로자에게 연장근로가산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 고용주의 이런 노동 요구가 가능한 근거는 농축산업·감시단속 노동자 등에게 법 적용 예외를 둔 근로기준법 63조에 있다.

근로기준법상 대부분의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으로 근로시간이 제한되고 휴게시간도 1일 1시간 이상(8시간 근무 기준) 주어져야 한다. 또 1주일에 1일 이상의 유급휴일이 부여된다. 연장근로도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다.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50%의 가산임금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63조로 농업 노동자는 이 같은 권리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김기돈 사무국장은 “이 책자는 가뜩이나 열악한 농업 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하기보다는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휴일·연장근로 등의 규정이 농업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반복해 설명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은 고용주에게 항의하러 갔을 때 오히려 이 책자를 들이대며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해당 근로자들은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이를 법으로 규정하게 되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것 같아 예외 규정을 둔 것”이라며 “안내책자는 노동관계법 특례조항을 농민들이 알기 쉽게 설명한 자료”라고 말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