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이주노동자들, 고국 돌아가 한-네팔 가교 역할


네팔서 의료지원사업 벌이는 AHRCDF와 희망의친구들 (서울=연합뉴스)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경험한 네팔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결성한 단체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AHRCDF)이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과 함께 네팔 오지의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의료 지원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이들은 최근 네팔 바누마을에 첫 진료소를 열기도 했다. 사진은 진료소 개원을 기념해 진료소 직원들과 AHRCDF 시디 찬드라 바랄 대표(사진의 맨 왼쪽),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 김미선 이사(왼쪽부터 일곱번 째) 등이 함께 찍은 것이다. 2013.12.20. 한민족센터 다문화부 기사 참조. <<사진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 제공>>

네팔서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 결성…자국 개발에도 기여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국내 이주노동자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고국에 돌아가 예비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활동을 적극 벌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다 귀환한 네팔인들이 2005년 결성한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Asia Human Right Culture Development Forum; 약칭 AHRCDF)은 벌써 창립 8주년을 맞아 네팔의 대표적인 NGO 단체로 부상했다.

이 단체를 창립해 현재까지 이끌고 있는 시디 찬드라 바랄(44) 대표는 20일 연합뉴스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보니 네팔에서 아무 계획 없이 한국에 올 것이 아니라 제대로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AHRCDF 창립 배경을 밝혔다.

바랄 대표는 1992년 1월부터 2005년 6월 말까지 10년 가까이 한국에 머물며 이주노동자로 살았다.

한 용접회사에서 일하다가 IMF 경제위기를 맞았고 그 타격으로 회사가 부도나면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비슷하게 임금을 떼인 이주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산업연수생 제도와 이주노동자 관련 법·제도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2003년 이주노동자들이 정부의 강제 출국 중단과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주장하며 서울 명동성당에서 벌인 농성에 참여했고 이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활동가로 일하다가 2005년 고국인 네팔로 귀환했다.

"한국에서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을 네팔에서 다시 모아 AHRCDF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운영위원 9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회비를 내는 친구들만 500명으로 늘었어요. 한국 이주노동 상담에만 10명이 배치돼 있고 한국어, 한국 법·사회문화, 기술 등을 교육하는 활동가가 60명 정도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는 한국의 임금 수준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만일 임금이 체불되면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근로계약서를 쓸 때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 실제 한국에서 살아가며 필요한 것들을 주로 알려주고 있다.

바랄 대표는 "먼 이국 땅에서 일하며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고향에서 가족이 돈을 제대로 저축하지 못해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례도 많다"며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짜서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조언해준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한국에 있을 때부터 연을 맺은 사단법인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 친구들'과 함께 네팔 도시 빈민과 오지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의료 지원, 학교 설립, 기술교육 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특히 의료 지원 사업은 한국과 네팔 간의 민간 교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AHRCDF는 한국에서 희망의 친구들이 구축한 의료공제 시스템을 본떠 공공 의료보험제도가 없는 네팔에서 빈민들을 위해 비슷한 의료 지원 제도를 만들어보려 시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희망의 친구들 의료공제는 공공 의료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이 한 달에 5천∼6천원만 내고 희망의 친구들 협력 의료기관에서 진료비를 할인받을 수 있는 제도다.

2006년부터 AHRCDF와 여러 협력 사업을 벌이고 있는 희망의 친구들 김미선 이사는 "우리나라도 해외 개발 사업에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 현지 파트너 단체가 얼마나 튼튼하게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네팔의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이란 단체가 없었다면 우리가 네팔에서 이런 사업들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다행스러워했다.

김 이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주민 문제와 국제 개발 사업을 연결하는 흐름이 대두되고 있다"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외국에서 돈을 벌어서 송금하는 것이 자국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본국에서 훌륭한 자원이 돼서 여러 방면에서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네팔 AHRCDF가 이런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낸 모범적인 사례라고 꼽았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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