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윈프린팅, 외국인 노동자 폭행사건 전말

"날 때린 회사서 다시 일하라고요?"

한종해 기자  2013.03.05 16:32:42

[일요시사=경제1팀] 폭행을 당하고도 신분 때문에 별다른 구제를 받지 못해 두 번 우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한 공장에서 외국인 폭행 공방이 벌어졌다. 작업 도중 시비가 붙어 욕설과 주먹이 오갔다. 이를 두고 사측과 노동자의 말이 다르다.


한 외국인 노동자가 최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한 외국인 노동자가 최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외국인 이주노동자 80만 시대다.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비판받았던 산업기술연수제를 대신해 2004년 8월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됨에 따라 송출 비리 등 일부 문제가 개선됐지만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차별 대우는 여전하다.

여기에 지난해 8월부터 변경·실시된 '사업장 변경 제도'는 사업장을 변경하려는 이주노동자 뿐 아니라 처음 구직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소 VS 맞고소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한국인 반장에게 폭행을 당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테라윈프린팅 공장이다.

1968년 삼양식품 인쇄사업부로 출범한 테라윈프린팅은 2008년 분사했지만 삼양식품과 삼양농수산에 라면, 스낵, 유제품 등의 포장지를 납품하는 등 여전히 삼양식품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는 삼양식품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남양농수산 대표를 맡았던 적이 있는 심의전 대표가 이끌고 있다.

원주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최철영 함께하는공동체 대표의 말에 따르면 지난 1월23일 외국인 이주노동자 A씨는 작업 도중 포장지 제조에 사용되는 용액을 바닥에 쏟았다. 이를 본 반장 B씨는 A씨의 얼굴을 가격하고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A씨는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

멱살을 잡힌 A씨는 이를 뿌리치고 사무실로 가 사측에 해당 사건을 알리고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다. B씨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측은 이를 묵살했다.

이후 A씨는 고용센터와 노동부 등에 진정을 제기하고 B씨를 형사 고소했다. 오히려 B씨는 "A씨에게 멱살을 잡혀 전치 1주에 해당하는 부상을 입었다"며 A씨를 맞고소했다.

A씨는 최 대표의 도움을 받아 원주고용센터에 사업장 직권 변경을 신청했다.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A씨는 한 달 동안 일을 놓으면서까지 고용센터의 결정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불허.

고용센터의 직권 사업자 변경은 '사용자 등의 책임'이 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데 폭행을 가한 B씨는 사장 등의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변경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A씨 "작업 도중 실수하자 반장이 주먹질"
사측 "그만두려고 의도적으로 다툼 유도"

A씨는 테라윈프린팅 공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사업장을 변경할 때 횟수, 사유, 기간, 절차 등의 제한을 받으면서도 고용센터로부터 구인업체를 제공받아 사업장의 노동조건을 확인하고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8월1일 이후, 이주노동자들이 회사의 노동조건을 따져보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연락이 먼저 와야 일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A씨가 폭행을 당하고도 공장으로 돌아간 이유다.

최 대표는 "A씨의 요구 사항은 금전적인 보상도, B씨의 처벌도 아닌 사업장 변경이다. 폭행 가해자와 어떻게 계속 함께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여기저기 발 닿는 곳은 다 찾아다니며 읍소했지만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며 "힘 없는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고용주에게 놀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측의 말은 달랐다. A씨가 '사업장 변경' 빌미를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툼을 유도했다는 것. 회사 관계자는 "평소 회사에 불만이 많았던 A씨가 사업장 변경을 위한 빌미를 만들기 위해 '멱살잡이'를 한 것이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서로 주먹이 오고 갔고 부상정도도 경미해 당사자들이 조율하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6∼7월 15세 이상 외국인 1만명을 표본으로 처음 조사한 '외국인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취업자수는 79만1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여기에 구직 활동 중인 실업자까지 더하면 외국인 경제활동인구는 82만4000명이다. 국내 일자리의 3.3%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의 외국인 인력정책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다. 오히려 사업장 변경 제한을 비롯한 각종 규제가 이들의 삶을 옥죈다. 불법 체류자 단속은 인권 논란까지 낳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취업시간은 60시간 이상인 경우가 33.4%, 월평균 임금도 68.4%가 100만∼200만원 미만을, 6.8%는 100만원 미만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양쪽 모두 "맞았다"

일할 수 있는 기간도 짧다. 체류 허가 기간이 최장 4년10개월이다. 특히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이 3회, 구직기간이 3개월로 각각 제한되는 등 각종 규제를 받는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고용한 기업들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수준은 역행하고 있다"며 "정부가 법 제도 자체를 뜯어 고쳐 더 이상 국제망신을 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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