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러 왔으면 놀지도 마"…쉴곳 없는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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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13:00 경남CBS 이상현 기자블로그

국내 거주 외국인 120만명 시대.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들이 55만명으로 가장 많다. 물론 통계에 빠진 불법체류자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최근들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분명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산업재해에 노출되는 등 노동환경은 좀처럼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이들의 '퇴근 후 삶'에 대해서는 관심자체가 없다. '월급주면 딴 생각 말고 일만 해야한다’는 인식속에 기본적인 여가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

고된 육체노동에, 고향을 떠나온 스트레스를 풀 곳 없는 이들은 이곳 저곳 떠돌다 결국 유흥이나 범죄로 빠진다. 과연 이들에게 여가를 즐길 권리는 주어질 수 없는것인지 경남CBS가 짚어본다. [편집자 주]


중국인 리 치우껀(39)씨.

지난 2006년 한국으로 건너와 목포에서 선원으로 일하던 리 씨는, 지난 해 갑판 위에서 닻을 내리다 큰 부상을 입었다. 다리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졌다.

치료 때문에 집에서 쉬고 있는 리씨의 하루 일과는 그야 말로 시간 때우기다. 인근에 중국인 동포들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일하러 가기 때문에 하루를 혼자 보내야 한다.

리씨가 살고 있는 김해의 자취방에는 텔레비전조차 없다. 집 주변을 돌아 다니다 주운 신문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이런 생활이 몇 달째 반복되고 있다.

파키스탄 청년 아시르(28)씨.3년 전부터 경기도 안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반복되는 고된 노동에 녹초가 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까지 겹친다. 즐겁게 놀면서 힘든 상황을 잠시나마 잊고 싶지만, 마땅히 '놀 꺼리'가 없다.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평일은 그렇다 쳐도, 주말에도 딱히 시간을 보낼 만한 것이 없다. 기숙사나 식당에서 친구들을 만나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인근 마트나 공원에 몰려 다니는 게 고작이다.

그는 "우리도 사람이잖아요. 할 일이 없어요. 일주일 동안 힘들게 일했잖아요. 스트레스도 풀고 싶고, 놀거리도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 "시간도, 돈도, 즐길 장소도 없어요"…씻고 잠들기 바빠

일단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즐길 수 있는 '여가시간'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다.

주로 3D 업종의 영세사업장에서, 토요일 근무를 포함해 주당 평균 50~60시간씩 일하고 있다.

지난 5월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가 전국의 이주노동자 931명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2시간에 달했다. 하루 10~14시간 일한다고 답한 노동자가 전체의 47.3%였다.

특히 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월급 때문에 강도 높은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외노협의 분석이다.

때문에, 이들은 평일 퇴근 후 숙소에서 밥 먹고 씻고 자기 바쁘다. 가끔 TV를 보거나 자국 동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빨래와 청소 등 집안일까지 하고 나면 잠들기 바쁘다.

김해이주민인권센터 김형진 소장은 "우리나라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스리랑카나 네팔은 같은 나라 이주민들은 밥까지 해먹어야 되기 때문에 퇴근 후에는 먹고 자는 게 사실상 전부"라고 말했다.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없지만, 돈도 없다. 먹고 자는 생활비를 빼놓고는 대부분 본국으로 송금한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지난 2009년 조사한 결과, 이주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액은 임금의 65%로 조사됐다. 반면, 여가 생활에 소요된다고 볼 수 있는 유흥비는 3.6%에 불과했고, 쇼핑(8.4%)을 합해도 12%에 그쳤다.

불법 체류자들의 경우, 단속돼 고국에 돌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심리적인 불안감 때문에 자국민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 외에는 밖으로 다니기를 아예 포기한다.

방글라데시인 모집(36) 씨는 "모이고 싶고, 놀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단속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마음 놓고 어울리지를 못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나 놀이 문화에 대한 정보 부족도 원인이 된다.

베트남인 이반송 씨는 "젊은 친구들은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바람도 쐬고 싶어서 여행을 가는 것을 바라고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아직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아메드(39)씨는 한국에 온지 벌써 10년째라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만, 아직도 근무 이외 시간에 특별히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놀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아는 사람도 많이 없는데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겠고, 돈도 없어 밖에 나가기를 포기하고 그냥 집에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 운동도 하고 싶지만…"혐오감 준다"며 운동장마저 뺏어버려

이처럼 여건은 녹록치 않지만, 이주노동자들도 여가생활을 열망하고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매일 매일 장시간의 육체 노동을 하고 나면, 쉬고 싶고,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타향살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음식에서부터 생활습관까지 다른 문화와 언어를 받아들여야 하는데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만든다.

파키스탄인 아시르는 "아직 한국말까지도 서툴러 일하면서 많이 혼이 나기도 하고, 몸이 아프거나 가족들 생각이 나면 당장 일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들에 대한 배려는커녕,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방글라데시인 아메드는 "한국인 작업반장이 '일하러 왔는데 일만 하면 됐지, 왜 엉뚱한 걸 할려고 하느냐, 열심히 돈벌어서 너희 나라에 돈 갖고 가라'고 하는 말 많이 했다"며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서러웠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남성인 이주민 노동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포츠를 좋아한다. 베트남이나 미얀마 노동자들은 주로 축구를 좋아하고, 필리핀 노동자들은 농구, 스리랑카나 파키스탄인들은 크리켓을 좋아한다.

그러나 장소 구하기부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운동장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데다, 외국인들이 모여 운동하는 것조차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남 창원에서는 경남이주민노동자인권센터 부근에 조그만 운동장이 있어 외국인노동자들이 이 곳에서 운동을 즐겨 했지만, 주민들이 외국인들에 대한 민원을 계속 제기해 결국 창원시는 운동장을 분수공원으로 바꿔 버린 일까지 생겼다.

경남이주민노동자센터 이철승 소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것 자체가 주민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운동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라고 말했다.

■ 건전한 여가활용 필요…"차별적 시선 거둬야"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건전하게 여가활동을 즐겨야 할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한국노사문화 진흥원 윤재섭 사무총장은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엄청난 노동강도와 노동시간 외에도 다른 말과 문화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적절히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여러 부작용을 막는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아낄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한국인이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하는 3D업종에 종사하며 우리사회의 빈 부분을 메워주는 역할을 이주노동자들이 하고 있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해 주고 있다는 인식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꿈을 실현하는 존재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아량이나 여유를 가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바라는 건 높은 수준의 여가활동이 아니다. 쉴 수 있는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다. 그런 환경을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지원과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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