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변경제한 3개월…이주노동자들 '아우성'

 
'쉼터'에 이주노동자 몰려…불법체류자 양산 우려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정부의 '브로커 개입 방지를 위한 사업장 변경제도 운영 개선 내용'이 시행된 지 3개월이 가까워져 오면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25일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구직을 하는 이주노동자에게 구인업체 명단을 제공하지 않고 구인업체에만 이주노동자를 추천하는 제도가 지난 8월1일 시행된 이후 새 사업주의 선택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2년째 경상남도 김해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 응엔 칵 틴(25) 씨는 "8월에 들어 회사의 일이 별로 없어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하면 가족에게 송금하지 못할 것 같아 직장을 옮기게 됐다"며 "일이 많아 연장수당을 받을 수 있는 회사를 찾고 싶은데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두 달 동안 지역 고용센터로부터 사업장 몇 곳을 소개받았지만 내게 적합하지 않은 직종이라 취업을 못했다"면서 "이후 적합한 회사 정보를 얻었지만 고용센터는 '지정 알선 불가' 원칙을 내세워 취업을 못하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과거 한번에 서너개 회사 명단을 받아도 취업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5일에 한개꼴로 회사를 알선받고 있어 새 사업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그는 두 달 동안 사업장을 찾아다니면서 교통비와 숙박비로 많은 돈을 써 현재 친구 집에 얹혀 지내고 있다.

대구 고용센터에서 사업장변경허가를 받고 인천 고용센터에 구직등록을 한 미얀마 이주노동자 A씨도 두달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역시 "고용센터로부터 사업장 소개문자를 몇 번 받았지만 원하는 직종이 아니었다"며 "친구의 소개로 원하는 직종의 사업주를 만나 그와 함께 고용센터에 갔지만 센터 측은 사업주와 이주노동자가 개별적으로 근로계약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앞세워 결국 원하는 직장에서 일할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제공하는 구인회사 정보도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미얀마 노동자 A씨는 "고용센터가 문자 메시지로 알선한 회사 두 곳 모두 사람을 구하지 않았고 이 두 회사 연락처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계속 발송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센터 측이 사람이 필요없는 회사를 마구잡이로 소개해주면서 실적만 올리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경상북도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 C씨도 최근 왜관의 어느 회사를 소개받고 택시를 타고 갔다가 외국인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듣고 되돌아와야 했다.

C씨는 "고용센터를 다시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한 뒤 다시 소개받은 회사에 주소를 물어 찾아갔으나 그런 회사를 찾지 못했고 이후 다시 소개받은 회사를 찾아갔지만 또다시 구인 계획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C씨는 지난달 3일에 근로계약이 해지돼 직장을 옮겨야 할 처지지만 구직을 신청한 지 두 달이 다 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근로희망지역 부근의 모텔에 계속 머물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이라면 외국인 노동자 특히 베트남 노동자들 가운데 불법체류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국 각지에서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각지 '쉼터'에는 새 사업장을 찾을 때까지 머물 곳이 없는 이주노동자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안산 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쉼터인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대표는 "지난 8월 새 조치 시행 이후 한때는 40명까지 머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3개월 동안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경우 미등록자(불법체류자)가 된다는 점을 우려해 석달째가 되면서 자신이 원하던 직장이 아닌 곳으로 가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이주인권센터 김기돈 정책국장은 "정부의 새 조치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것으로 정부는 지침 시행 3개월 동안 상황을 파악해 미비점을 개선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많은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새 사업장을 구하지 못해 오갈 곳이 없게 만드는 것은 반인권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 안정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대한불교조계종 노동위원회는 고용노동부에 '브로커 개입 방지를 위한 사업장 변경제도 운영 개선 지침'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내기도 했다.

k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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