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컴퓨터, 이주노동자 정신질환 유발?

사업장 변경 권리 박탈 속 잘못된 알선정보...정신질환 얻고 강제출국도

고용노동부의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 방지대책’ 지침시행 3개월이 가까워오면서 되레 이주노동자들의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 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28일 오후,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지침시행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권리 박탈 피해사례를 발표하고 고용노동부의 지침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 결과를 발표했다.

고용부는 지난 8월, 일자리 알선 브로커에 의해 이주노동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의 생산성 역시 저하되고 있다면서 이를 단속하기 위해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 방지대책’을 시행했다. 고용부의 지침은 이주노동자가 직접 사업장을 구할 수 있는 모든 창구를 차단하고 있다.


사업주와 함께 고용센터 방문했더니....
사업장과 이주노동자 연결은 컴퓨터가 하는 일?


그러나 정작 이주노동자들은 시행 지침이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권리를 침해하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와 인권 침해, 심각할 경우 강제출국까지 강제하는 악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 응웬 씨는 지난 9월 3일 근로계약을 해지하고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두 달이 되도록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응웬 씨는 “고용센터가 그동안 3번의 사업장을 알선해 줬지만 모두 신청 직종과는 무관해 일을 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고용센터가 연락을 주면 곧바로 갈 수 있도록 신청한 지역 부근에 숙소를 마련하고 대기해야 했고 정확하지 않은 알선 정보로 시간과 교통비만 낭비한 경우가 숱하다고 밝혔다.

응웬 씨는 구직활동에 드는 비용과 품도 부담스럽지만 무엇보다 “‘불법체류자’가 되는 일이 가장 두렵다”고 밝혔다. 고용부의 이번 지침에 의하면 3개월간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강제출국되고 이를 거부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 즉 ‘불법체류자’가 된다.

미얀마 출신의 이주노동자 A 씨도 구직기간 2개월이 넘도록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 역시 고용센터에서 소개해 준 일자리는 자신의 가능직종과 거리가 있었다. A 씨는 지인으로부터 한 사업장을 소개받아 그 곳에 취직하려고 사업주와 함께 고용센터를 방문했지만 고용센터는 “사업주와 이주노동자가 임의로 근로계약을 할 수 없다”며 A 씨의 취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용센터 직원은 “고용노동부에서 사업장과 이주노동자들을 연결하는 일은 모두 컴퓨터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양쪽이 서로를 원해도 고용노동부가 연결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A 씨는 또한 “고용노동부의 컴퓨터는 이상하다”고 말했다. 고용센터가 알선해준 사업장에 연락하면 아예 회사가 없거나 채용계획이 없다는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A 씨는 “친구들도 고용센터가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는 회사 연락처만 알려준다고 말한다”며 고용센터의 취업알선이 구직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고용센터가 알선해준 사업장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채용 계획이 없는 등 고용센터의 직업 알선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주노동자에 극심한 스트레스 유발하는 개선책

고용부의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 방지대책’은 이주노동자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지침에 따라 3개월 안에 직업을 구하지 못하면 강제출국되기 때문이다. 네팔 노동자 M 씨는 고용센터에서 알선한 사업장을 찾아 면접을 보고 일을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주도 M씨를 마음에 들어해 근로계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고용센터를 찾았으나 고용센터는 “알선 이후 3일이 지나서 근로계약을 체결 할 수 없다”며 등록을 거부했다.

M 씨는 수차례 고용센터를 찾고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았으나 결국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M 씨는 이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강제출국에 대한 압박감 등으로 정신질환을 얻었다. 정신과도 당장 일을 할 수 없다는 소견을 내놨다. M 씨는 결국 코리안 드림을 꾸며 온 한국에서 1년도 지나지 않아 정신질환만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M 씨 외에도 고용노동부 지침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숱하다. 이들은 새로운 사업장을 구하기 어려워 임금체불이나 구타 등 인권침해가 빈번한 사업장을 그만두지 못하거나 사업장을 그만둬도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해 강제출국의 공포를 겪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내놓은 지침이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에게 인권침해와 스트레스를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우다야 위원장, “이주노동자 현실에 맞게 지침 철회해야”

비대위는 이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지침이 시행된 8월부터 꾸준히 고용허가제 지침폐지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아왔다. 이 서명에는 총 4,03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했다. 비대위는 이 서명을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면서 고용허가제 폐지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권리 보장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주노조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직장선택의 자유는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주어진 권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고용노동부 지침은 사업주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져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지만 고용부는 정작 이주노동자들이 괴로워하고 있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며 고용노동부를 규탄했다. 우다야 위원장은 “우리의 권리를 위해서 스스로 나설 것”이라며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맞게 지침을 철회하고 새로운 정책을 펼쳐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주노동자들과 비대위는 서명을 제출함과 동시에 고용노동부를 압박하며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진행한다. 지난 8월 토론회에서 “시행 3개월간 지켜보고 지침에 대한 토론을 다시 하자”는 약속에 따라 은수미 의원실과 함께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토론회가 11월 중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11월 11일 노동자대회에는 이주노동자 사전 결의대회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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