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지침, 외국인에 노예노동 강요”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ㆍ구인 사업장 명단은 안 주고 사업주에 구직 명단만 제공
ㆍ이주노동자들 선택권 박탈

지난 7월 중순 경기 안산시의 한 공장을 그만둔 네팔인 ㄱ씨(28)는 지금까지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센터로부터 구인 사업장 명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사업장에 이력서를 낼 수도 없다. ㄱ씨가 새 직장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어느 사업장에 추천됐다’는 고용센터의 문자메시지를 기다리는 일뿐이다. 그는 두 달가량의 실업기간 동안 6개 사업장에 추천됐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 중 3번은 면접에서 탈락했다. 나머지 3번은 ㄱ씨가 고사했다. 네팔에 있는 가족에 송금하고 돈을 모을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ㄱ씨는 20일 안에 새 직장을 얻지 못하면 미등록 체류자로 강제추방당할 처지다.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가 3개월간 사업장에서 일을 하지 못하면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장에서는 3배수로 구직자를 추천받고 있는데 나를 선택할지 걱정”이라며 “강제출국을 피하기 위해선 나를 불러주는 사업장이 있기만 하면 무조건 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대전의 일하던 공장에서 퇴사한 외국인 노동자 ㄴ씨(30)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퇴사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8번밖에 면접을 보지 못했다. 과거 같으면 한꺼번에 10곳에 이력서를 내고 일을 할 회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가 강제출국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달 안에 자신을 원하는 사업주가 생기는 것밖에 없다.

노동부가 지난달부터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구인 사업장 명단을 주지 않고 사업장에만 구직자 명단을 제공하는 ‘외국인 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 방지대책’을 시행한 후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업장 선택권리를 박탈당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19만40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과거처럼 제공받은 사업장 명단을 가지고 구직활동을 벌일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잦은 이직으로 사업장의 인력난이 심화되고 다른 노동자의 근로의욕도 떨어뜨렸다”며 “이 과정에 브로커들이 개입, 이직을 조장해 사업장에 피해를 주고 이들에게 사기를 당한 노동자들까지 나와 제도를 시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고용센터로 취업 알선 기능을 일원화해 브로커 개입의 피해를 막고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알선담당자 지정 등 고용센터의 기능을 대폭 확대해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주공동행동 등 9개 외국인 노동·인권 단체 소속 외국인 노동자 1000명은 23일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노동부가 외국인 노동자의 동의 없이 노예노동을 강요하는 반인권적 지침을 내렸다”며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김기돈 이주노동자인권연대 대표는 “사업장 변경을 신청한 노동자의 비율은 2008년 38.7%에서 2011년 39.6%로 크게 변동이 없고 브로커들이 얼마나 개입하는지도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외국인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직군이나 사업장 규모 등이 이미 제한된 상태에서 이들이 원하는 사업장마저 선택할 수 없게 한 것은 오로지 사업장의 편의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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