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의 추석…안산 원곡시장 뒷 골목에 배인 슬픔

▶1-3-2 날짜, 기자

2012-09-30 06:00 | CBS 김양수 기자블로그

낯선 향을 풍기며 숯불위에서 지글 지글 익고 있는 꼬치, 옌벤식 순대, 월병, 파파야, 두리안 등 이국적인 먹거리가 즐비하고 삼삼오오 장을 보고 있는 이방인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금요일 오후 소낙비가 그친 뒤 몰려나온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안산 원곡시장의 풍경이다.

타향살이의 설움을 달래줄 고향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양고기, 오리고기, 닭고기, 고수,강황 등 각종 음식재료를 양손가득 구입하는 풍경을 보니 명절을 맞은 우리네 시장과 닮아 보였다.

코리안 드림을 쫓아 이역만리 타향에서 고생스러울 때도 있지만 한국의 명절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들이다.

하지만 시장 뒷골목으로 접어들면서 술잔을 기울이거나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이방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애환이 아스라이 전해져왔다.

◈ 한국살이가 서러운 이주노동자들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은 활기를 띠고 있었지만 골목안 식당가에서는 양꼬치와 독주를 곁들이며 고독을 달래는 이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온 한국계 김 처브스키(czewski·52) 씨는 한국살이를 시작한지 불과 1개월 남짓하지만 고단하고 피로한 기색이 엿보였다.

김 처브스키 씨는 "한국에서 잡은 첫 일자리가 한달만에 파산해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며 "아직 새로운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명절을 맞으니 고향에 있는 자식들이 그리울 뿐"이라고 했다.

중국식당에 앉아 한 컵 가득 고량주를 따라 비우고 있는 옌벤 출신 주관민(중국·33) 씨.

다소 야윈 모습에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주씨는 고통을 달래기 위해 폭음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 씨는 만 3년을 산업연수생으로 일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입국한지 일주일만에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쳤다고 한다.

거동을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통증으로 인해 침을 맞으며 요사이 며칠을 놀았다는 것.

주 씨는 "돈을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허리도 아프고 기약 없이 공칠 생각을 하니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다치고 실직한 이주노동자들이 맞는 한국의 추석, 그래서 더 서글퍼 보인다.

◈ 지겨운 한국살이…고향에 가고파

네팔 식료품 가게 앞에서 쭈그려 앉아 연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카티와다(khatiwada·35) 씨.

카트만두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두 아이의 가장이기도 한 카티와다씨는 몇 년째 제대로 된 가장 노릇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받지 못한 월급이 벌써 1,000만 원을 넘었다는 것이다.
카티와다 씨가 다니는 안산의 한 염색공장이 거래처로부터 대금을 지불받지 못해 월급이 밀린 상태였다.

답답한 마음에 원곡동에 나온 카티와다씨는 "한국의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제껏 받지 못한 급여 문제로 인해 답답할 뿐"이라며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외국인지원센터의 한 관계자는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체불, 실직 등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추석을 맞은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살이가 더욱 서글퍼 보인다"고 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