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고용내몰리는 이주노동자들

[한겨레]|2012-07-18|12|05|1321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은 뒤 한 달째 일터를 찾지 못했다. 고용허가제로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온 아룬(28·가명)에게 새 일자리 찾는 일은 녹록지 않다. 어느 공장에 찾아가니 기숙사가 없다고 하고, 다른 사장은 밑도 끝도 없이 캄보디아 사람은 싫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허탕이다.

 최근 아룬에게 걱정이 또 하나 생겼다. 오는 8월부터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센터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알선장을 주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은 일터를 옮길 때 구인업체들의 정보가 적혀 있는 알선장을 받아 자신의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구했다. 앞으로 알선장이 없어지면 직접 일자리를 구해 옮기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대신 고용센터로부터 구직자들의 정보를 넘겨받은 업체가 걸어오는 전화를 기다려야 한다. 다니던 공장을 그만둔 뒤 3개월 안에 새 직장을 얻지 못하면 미등록 체류자로 강제추방된다. 아룬이 강제추방을 피하는 길은 하나다. 앞으로 두달 안에 어느 고용주가 자신을 선택해주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브로커들이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과정에 개입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에게 구인업체 정보를 주지 않고 구인업체에만 구직자 명단을 제공하는 사업장 변경 제도 개선안81일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합리적 이유 없이 구인 사용자의 면접 요청이나 채용 의사를 거부할 경우 2주간 알선이 중단되는 등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는 단서조항까지 달았다. 채용 제안을 거부한 이주노동자를 사실상 처벌하는 셈이다. 반면 고용주 입장에선 여러 이주노동자의 개인정보를 비교하며 입맛대로 골라갈 수 있다. “사실상 노예시장방식의 고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제도 변경 취지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잦은 사업장 변경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성실한 다른 근로자까지 근로의욕을 저하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오히려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사업장을 변경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주노동자 쉼터인 지구인의 정류장김이찬 대표는 기존에는 이주노동자가 부지런히 움직이면 다양한 업체 정보를 얻고 조건에 맞는 직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변경되는 제도는 이주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을 억압함과 동시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등 시민단체들은 17일 경기 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주노동자의 동의 없이 노예노동을 강요하고, 반인권적 지침을 내렸다며 고용노동부를 규탄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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