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 대신 시신 기증…이주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

 
【인천=뉴시스】차성민 기자 = 병든 아들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서 일하다 쓸쓸히 세상을 떠난 필리핀 국적 이주노동자 엄마의 안타까운 사연이 뒤 늦게 알려졌다.

아시아 이주노동자들과 동거동락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산문집 <이주, 그 먼 길>로 펴낸 이세기 시인은 8일 오전 경인방송 라디오 '상쾌한 아침, 원기범입니다'에 출연해 이 같은 사연을 전했다.

이세기 시인은 이주노동자와 같이 일하면서 겪은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을 묻는 질문에 "필리핀 이주 노동자 조안 씨가 생각난다"고 대답했다.

고 조안 씨는 출산 과정에서 하반신이 마비된 2살 난 아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2007년 한국에 왔다.

인천 계산동의 한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그 자신도 몸이 아파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쫓겨났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혈액종양, 백혈병 진단을 내렸다.

치료비 마련조차 힘든 투병생활 이었지만 병든 아들을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필리핀에 남겨진 딸과 아들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버티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생명을 아들에게 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자신마저 병든 처지였다.

병마를 이겨내고 필리핀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지만 눈은 점점 멀고, 혈액 종양이 온 몸을 파고 들었다. 조안 씨는 2009년 사랑하는 가족을 필리핀에 남겨 둔 채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세기 시인은 "돈이 없어서 비행기 편을 구하지 못해 남편과 딸은 조안 씨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며 "타이완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조안 씨의 어머니도 비자를 받지 못해 그녀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안 씨의 사체는 그동안 밀린 병원비를 대신해 대학병원에 신체 해부용으로 기증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세기 시인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주노동자와 그들 가족의 권리 보호를 위한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이주노동을 받아들이고 있는 38개국에서 채택하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인권 후진국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sm7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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