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한국인' 상일이가 울고 있다

 

지난 3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의 월세 6만원짜리 단칸방. 재중동포 김상일(15)군은 벽에 기댄 채 힘없이 앉아 있었다. 탁상에 올려 놓은 김군의 왼손에는 엄지 하나뿐이었다. 검지 중간 정도부터 새끼손가락 뿌리 부분까지 손가락 4개는 사고로 잃었다. 봉합한 손가락 끝은 아직도 퉁퉁 부어 있었다.

"괜찮습니다." 상일군이 서툰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170㎝ 정도의 키에 노랗게 염색한 머리가 제법 어른스러웠지만 상일이는 올해 14살이다.

상일군이 손가락을 잃은 것은 지난해 12월 12일. 조선족 형들을 따라 나간 평택시 포승국가산업단지의 한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에서 관리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출기에 손이 빨려 들어갔다. 첫 날이었고, 작업을 시작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당한 사고였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평택시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잘린 손가락의 훼손이 심해 봉합은 불가능했다. 병원 관계자는 "포승산단에서 외국인 부상자가 많이 발생하지만 어린 아이가 이렇게 중상을 당한 것은 처음"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상일군은 (사)지구촌사랑나눔의 도움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고, 한국 국적 신청도 준비 중이다.

할아버지 김봉호(75)씨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심정이다.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집을 나간 손자는 장애인이 돼서 돌아왔다. 김씨는 "공장에 가는 줄 알았으면 절대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할 수만 있다면 내 손가락을 떼 붙여주고 싶다"며 가슴을 쳤다.

상일군은 6년 전 국적을 회복한 할아버지를 찾아 아버지와 함께 2010년 7월 입국한 일명 중도입국자다. 중도입국자는 부모의 결혼이민이나 국적회복 등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을 일컫는 신조어로 대다수가 미성년자라 중도입국청소년으로 부르기도 한다. 최근 급격히 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법무부가 매월 파악하는 외국인현황에서 중도입국자는 방문동거(F-1) 비자 소지자로 분류된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F-1 비자 소지자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약 4만5,000명. 국적은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부모와 살아야 하는 어정쩡한 중도입국청소년들이 이 안에 존재한다.

법무부는 지난해에서야 중도입국의 개념과 범위를 확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실을 반영한 통계가 나오기까지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중도입국청소년 현황과 지원방안'이란 연구자료를 발표하며 중도입국청소년을 5,726명으로 집계했다. 2010년 귀화를 신청한 부모동반 입국자 중 21세 이하를 대상으로 삼은 결과다. 연구에 따르면 중도입국청소년은 90%가 조선족이나 중국인이고, 약 70%는 서울ㆍ경기에 거주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학령기 청소년들의 중학교 재학률은 18%, 고등학교 재학률은 3%에 불과하다.

이들은 학교도 안 다니고 한국어도 못하다보니 끼리끼리 모여서 방황하기 일쑤다. 중국 길림성에서 중학교 1학년을 다니다 온 상일군도 다문화학교에서 알게 된 조선족 형들과 어울리다 인력파견업체까지 따라가게 됐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대표는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아이들이 7,000~8000명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의 방황은 심각한 사회문제라 다문화가족 범위를 확대해서 지원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