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대법원 이주노조 판결에 부쳐 ④] 이주노동자들의 작은 승리, 그러나 그 뒤의 긴 슬픔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편집부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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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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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1980년대 중반쯤이었다. 나보다 항상 역사를 몇 걸음 앞서 내다보며 활동 분야를 개척해 나가던 동료 노동운동가가 어느 일요일에 나를 불러냈다. “앞으로 한국 사회도 외국인 노동자(그때는 한다하는 진보적 활동가들도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생각해 내지 못했을 만큼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이해가 취약했다)들의 인권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니 우리 같은 노동상담 활동가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서울 건국대 근처 한 성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성당 마당에 이주노동자들이 차고 넘쳤다. 책상을 땡볕에 내다 놓고 앉아 몇 시간 동안이나 짧은 영어 실력으로 노동상담을 했다.

그 뒤로 몇 번 더 참여했던 그 활동을 열심히 계속하지 못한 이유는 물론 다른 활동이 많아져서 시간을 내기 어렵기도 했지만, 내가 만났던 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갈등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조국에서는 신인민군(NPA)이 총을 들고 싸우고 있는데 돈 벌겠다고 다른 나라에 온 대학 졸업자들이 당시 경직된 사고를 마치 선명한 계급성인 것처럼 오해하던 초보 노동상담 활동가 눈에는 ‘도망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사람들 말고도 고통당하는 한국 노동자들이 이 땅에 많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했다.

그 뒤로 무단 침입한 단속반원들을 피해 도망가던 이주노동자가 건물 고층에서 떨어져 중태에 빠졌을 때도, 공장에 들어온 한국 사람을 단속반원으로 착각한 이주노동자가 그 충격에 놀라 심장마비로 숨졌을 때도, 출입국사무소에서 조사를 받던 이주노동자가 공포에 못 이겨 건물에서 뛰어내려 숨졌을 때도, 단속반원을 피해 산으로 도주한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을 때도…. 남의 일 보듯 했다고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한국 법원의 판결이 오히려 무지한 나를 앞질렀다. 2007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1심과 달리 “불법체류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라고 판결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인권과 노동권을 요구하며 처절한 투쟁을 벌여 온 성과”라며 “숨죽이고 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반겼다.

이 작은 승리에 대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07년 2월11일 새벽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소에 불이 나 9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큰불이 아니었음에도 화재에 대비한 시설이 거의 없었고 굳게 담긴 문이 열리지 않는 바람에 사람들이 철창 안에 갇힌 채 화염 속에서 죽어 갔다. 유족들이 참담한 시신 앞에서 “대체 이주노동자들을 사람으로 보기나 했었느냐”고 울부짖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은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과 함께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둔 우리들에게도 있다. 외국인보호소에서 폐쇄회로 티브이나 전기봉 등 반인권적 수단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그것을 개선하기는커녕 불법 양태를 개선하겠다며 반인권적 방법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넣은 사실을 아는가. ‘고용허가제’는 글자 그대로 기업주의 고용을 위한 제도이니 노동하는 사람을 위한 ‘노동허가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이주노동자들이 자유롭게 회사를 이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실제 이유는 그렇게 하면 이주노동자 임금이 상승하고 노동환경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야 하는 등 기업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온 이주노동자가 “힘들 때 어떻게 하냐”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그냥 참아요”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린 적이 있는가.

미등록 노동자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체제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를 방치한 책임으로부터 우리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도덕률이 수만 년 인류 진화 과정에서 확립된 이유는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전체 구성원들에게 유익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그 원칙에서 제외될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합법화하는 일은 우리 모두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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