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車에 웬 심폐소생 기기?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불법체류자 단속 차량에 최근 제세동기(除細動器·심장고압전류를 짧은 시간 통하게 해 정상적인 맥박으로 회복시키는 기기)가 설치됐다. ‘건강이상이 있을시 직원에게 말씀하세요’라는 안내문도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부착됐다. 서울관리소 직원들은 처음으로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응급처치 교육을 받았다.

수도권의 불법체류 외국인을 단속하는 서울관리소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긴 이유는 뭘까. 지난달 8일 경기도 김포에서 중국인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던 서울관리소 단속반은 긴급한 상황에 처했다. 약 200m를 도망치다 붙잡힌 중국인 허모(44)씨가 오후 7시5분쯤 단속 차량에서 심근경색을 일으켰다. 허씨가 호흡곤란을 호소하자 직원들이 급히 119구급대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허씨는 결국 35분쯤 지난 뒤 숨졌다. 단속 차량 안에서 불법체류자가 사망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서울관리소의 뒤늦은 대응을 비판했다. 이주민공동행동 김기돈 국장은 11일 “허씨가 단속 차량에 탔을 때부터 몸이 차게 식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며 “함께 차에 탄 다른 두 명이 ‘이 사람 이상하다’고 했는데도 단속반이 곧바로 대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관리소는 초동대처가 다소 늦었지만 의도적으로 허씨의 상태를 무시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서울관리소 관계자는 “직원들이 단속 차량에 탄 다른 불법체류자 7명의 신원을 확인하느라 허씨의 상태를 늦게 알았다”면서 “허씨가 도주하다 잡혀 고개를 숙이고 쉬는 것으로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불법체류자들이 ‘허씨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직원들이 신원을 확인하다 이상 징후를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업무 중 특별한 과실로 보기 힘들다”고 결론내렸다.

명백한 과실 여부를 따지기 힘든 상황에서 서울관리소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관리소는 지난달 25일 대당 320만원에 달하는 제세동기를 구입해 설치했고 안내문을 3개 국어로 부착했다. 이에 더해 직원 50여명은 지난달 29일 서울 양천소방서에서 응급처치 교육을 받았다.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근본적 개선 없이 무리한 단속이 계속돼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관리소는 “법 절차에 따라 단속하고 있어 폭행 등 무리한 단속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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