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금지법 만들어야 할 때
2015년 01월 28일 (수) 10:38:08 호수:208호 19면 고준기 김해외국인력지원센터 원장 report@gimhaenews.co.kr

▲ 고준기 김해외국인력지원센터 원장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바뀌면서 저개발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 인종 차별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주민 여성의 목욕탕 출입을 거부하거나, 상점 점원이 피부가 검은 이주민에게 모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도 있다. 개인적 차원의 모욕을 넘어 고용, 교육, 각종 서비스 이용 등 사회활동 전반에 걸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미미해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동안 김해에서는 이주민 남성이 '한국 여성을 성폭행했다'거나 '주민을 살해했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주민들이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내국인들이 외모의 차이에서 생긴 이주민 혐오현상 때문에 만든 헛소문이라고 한다. 이주민들은 범죄를 쉽게 일으킬 수 있는 집단이라고 보는 편견이 빚어낸 해프닝이다.

우리사회에서 인종 차별은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유엔의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한국의 인종 차별 문제를 제기하면서 차별 해소를 위한 법제화를 권고한 바 있다.

지난 역사를 보면 한국인들은 인종차별의 대상이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에 사는 한국 동포들은 아직도 혐한 시위 및 '헤이트 스피치'(증오언설)의 대상이 돼 심각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헤이트 스피치는 인종·민족·종교적 소수자에 대해 적대 의식을 가지고 증오를 부추기려고 내뱉는 차별적인 표현이다. 최근 일본법원은 헤이트스피치를 주도한 단체를 인종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헤이트 스피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과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민사적 구제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만 보여주었을 뿐 형사처벌은 못하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도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을 고려해 헤이트 스피치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에 익숙하고 획일화된 문화에 젖어 인종 편견이 심한 편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주민들이 체감하는 인종 차별 수준은 매우 높다. 우리는 피부가 다르고 말이 서투르고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아시아에서 온 이주민들을 차별하고 무시한다. 인종차별은 그 정도가 아무리 미미하다고 해도 차별을 겪는 사람에게는 큰 상처로 남게 된다. 편견과 차별은 생활의 기회를 빼앗고 삶의 질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에 기여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 볼 때 큰 손해다.

다문화사회의 출발은 상호존중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관용에서 시작한다. 거기에 갑과 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인종 차별 없는 건강한 사회'라는 구호는 이제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최근 외국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수집단인 이주민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할 경우, 그들은 불만세력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어 범죄, 폭동 등의 형태로 사회에 피해를 주게 된다. 2005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아랍계 청년들의 폭동은 인종, 종교, 출신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수자가 소수자인 이주민들을 배제하고 차별했을 때 그 비용을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우리 사회가 이주민들을 차별하면, 그것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사회적 비용을 강요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더 이상 인종 차별을 방치할 수 없다. 국민 개개인의 자각과 인식 전환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합리적 근거가 없는 인종 차별을 금지시키고, 불합리한 차별을 받은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담은 '인종차별금지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사회적 인식의 변화 없이 법만 만든다고 인종 차별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법제도 자체만으로도 인종 차별이라는 인식 전환에 크게 기여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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