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절벽’에 선 한국, 결국 ‘이민국가’로 가야 하나

입력 : 2017-08-24 08:30

우리나라 월별 출생아 수는 올해 들어 매달 최저치를 갱신했다. 23일 발표된 6월 집계에서 마침내 3만명 아래로 내려앉았다. 감소율은 지난해 12월부터 줄곧 두 자릿수다. 이대로 가면 연간 출생아 수가 사상 처음 40만명 아래로 내려간다. 한국은 지금 ‘출산절벽’에 섰다.

이런 수치를 집계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가임기 여성 인구 자체가 줄어들었다”고 원인을 말한다. 장기간 지속돼온 저출산 현상은 이제 ‘아이 낳지 않는 문제’를 넘어 ‘아이 낳을 여성이 없는 문제’로 악화됐다. 출산을 장려해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차츰 벗어나고 있다.

2002년은 우리나라 저출산 현상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이 때부터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해 2005년 출산율 1.08명으로 세계 최저치를 기록했다. 2002년 이후 출생자들이 가임연령군을 형성하게 되는 10년 뒤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 정점을 찍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인구사태’라고 불러야 할 이 문제에 맞서 쓸 수 있는 정책 카드도 하나둘 소진되는 시기가 코앞에 닥쳤다. 부족한 인구를 메우고 급속한 출산 감소 추세에 제동을 걸려면 결국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가르쳤던 교과서를 ‘한국은 이민국가’라고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1983년, 최악의 오판 

후대의 역사가들은 ‘1983년’을 우리 세대가 최악의 오판(誤判)을 한 해로 기록할지 모른다. 그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2.06명이었다. 사상 처음 인구대체수준(2.1명) 아래로 떨어졌다. 2명(부모)이 2명(자녀)씩은 낳아야 부모세대가 세상을 떠나도 현 인구가 유지된다. 여기에 조기 사망 등 변수를 감안한 현상유지 출산율이 2.1명인데, 1983년 그 선이 무너졌다. 

이 수치가 비상등인 줄 몰랐던 우리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가족계획 구호를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으로 오히려 강화했다. 이후 출산율은 80년대 말 1.5명까지 급락하더니 2005년 1.08명의 세계 최저치를 기록했다. 뒤늦게(1996년) 가족계획을 접고, 뒤늦게(2004년) 저출산 대책에 나섰지만 올해 출산율 전망치는 1.04명이다. 역대 최저치를 갱신하게 됐다.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쏟아 부은 100조원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983년의 오판이 불러온 인구사태는 30년이 넘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아직 일터를 지키는 ‘인구보너스’ 기간은 끝물에 왔다. 노후보장을 위한 복지비용, 정년연장에 따른 고용 문제, 내수부진과 저성장, 학생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 등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는 인구사태에 기인한다. 10년 뒤 베이비부머들이 다 은퇴하고 ‘초저출산 세대’가 성인이 되면 더 심각해질 것이다. 


◇ ‘순혈주의’에서 ‘이민국가’로… 독일의 선택 

미국이 강대국인 건 경제력과 군사력에 출산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떨어졌다고 호들갑떨던 2011년이 1.87명이었다. 독신과 이혼이 그렇게 많은데도 현재 2명에 바짝 근접해 있다. 이민자의 나라답게 해외 젊은 인구를 계속 받아들여 인구증가율을 유지한다.

독일 라인강의 기적은 외국인 노동자의 힘이었다. 출산율이 유럽 최하위권인 독일은 2차 대전 후 경제부흥기에 노동력이 부족하자 먼저 그리스·이탈리아에서, 이어 터키에서, 나중엔 우리나라 광부·간호사까지 이주노동자를 받았다. 현재 이주민이 인구의 20%를 차지한다.

이민을 대하는 독일의 시선은 미국과 달랐다. 이주노동자를 ‘손님근로자’라 불렀다. 영주권을 주는 미국과 달리 다시 돌아갈 사람들로 여겼다. 단일민족 정서가 우리만큼 강한 독일이 생각을 바꾼 건 2005년이다. 새 이민법의 첫줄에서 ‘독일은 이민국가’라고 선언하며 적극적 이민 유치 및 이민자 통합 정책을 법제화했다. 돌려보내던 이민자와 함께 살기로 한 것이다.

당시 독일에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집권 사회민주당은 저출산·고령화, 노동력 부족, 경기침체를 해소하려면 이민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야당인 기독교민주연합은 실업이 더 심각해질 거라며 반대했다. 결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이민이 필수라는 재계의 요구를 반대파가 수용했다. 그리고 10년 뒤, 이민국가화(化)에 반대했던 기독교민주연합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난민 수용의 선봉에 섰다. ‘난민=인구’로 본 것이다. 

◇ 정부 “출산과 관련된 모든 지표가 나쁘다” 

우리나라 저출산 상황은 임계치를 넘어섰다. 올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은 1.04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저는 2005년의 1.08명이었다. 통계청이 집계한 6월 출생아는 2만8900명. 지난해 6월과 비교해 12.2%나 감소했다. 6월 기준으로 출생아 수가 3만명 이하로 떨어지기는 처음이다. 

올해 상반기(1~6월) 누적 출생아 수는 18만8500명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12.3% 줄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신생아 수는 36만명에 불과할 전망이다. 지난해 간신히 지킨 40만명 선이 무너지게 된다. 

극심한 저출산의 원인은 ‘30대 여성인구 감소’ ‘혼인 감소’ ‘늦은 출산’이다. 가장 아이를 많이 낳는 30~34세 여성은 2분기에 1000명당 아이 24.6명을 낳았다. 전년 동기 대비 3.3명 줄었다. 2분기 혼인 건수는 6만9300건으로 4.5% 감소했다. 반면 첫째 아이 출산 시 평균 결혼생활 기간은 1.94년으로 0.05년 늘었다. 첫째 아이 출산시기가 늦어지면 둘째·셋째 출산은 더 부담스러워진다. 통계청 관계자는 “출산과 관련된 모든 지표가 나쁜 상황”이라고 말했다. 


◇ ‘3차 저출산 기본계획’에 등장한 ‘이민’ 

정부는 2015년 저출산·고령화 극복을 위해 ‘혼외출산 차별금지’와 함께 ‘이민정책’을 꺼내들었다. 외국인의 국내 정착을 위한 중장기 이민정책을 처음 수립하겠다고 나섰다. 노동력 확보를 위한 인력수급 중심이 아닌 국내 출산율과 생산가능 인구 등을 고려해 이민자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 계획에서 중장기 이민 정책이 언급되기는 처음이었다. 올해 수립되는 ‘제3차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2018∼2022년)에서 국내 생산가능 인구와 경제상황 등을 고려해 이민 도입 규모와 우선순위를 제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었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급격한 ‘인구절벽’에 봉착하게 된다는 절박한 인식 아래 대책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2020년 합계출산율을 1.5명으로, 출생아 수는 49만명으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출산율은 1명 선을 지키기도 불안해졌고, 출생아 수는 40만명을 밑돌게 됐다.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수반하게 될 ‘이민국가화’. 그 충격을 맞닥뜨리게 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703938&code=61121111&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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