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각지대, 이주여성 노동자가 운다

▲    ©여성신문

저는 베트남 이주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입니다. 아내의 친구도 한국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인데 친정어머니를 한국에 초청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한국인 남성(동료)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해 임신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 사실을 사장이 알고 동료를 불러 따지자 60만원 주고 합의하자고 했답니다. 친정어머니는 친척방문비자로 입국했는데 경찰서 등에 신고해서 구제받을 수 있나요?”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 얼마 전 이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 논의 결과 이주여성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시민단체와 연계했지만 당사자는 베트남에 남편이 있어 문제가 공론화되면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한국 체류 자격도 문제될 것을 염려해 가해자를 신고하지 않기로 했다.

통계청의 2012년 6월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취업자 79만1000여 명 가운데 이주여성은 27만4000여 명(34.6%)으로 국내 전체 노동자 2500만여 명의 1%가 넘는다. 통계청 자료에서 누락된 미등록(여성) 체류자 5만7000명과 체류 목적과 다르게 일하는 이주여성까지 포함한다면 약 33만 명의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체류 기간을 초과했거나 체류 목적과 다르게 일한 이주여성 노동자의 경우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본국으로 강제 추방될 것을 염려해 경찰서 등에 신고하기보다 거주지나 사업장을 변경해 문제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정을 아는 한국인 가해자는 이주여성을 오히려 협박하기도 한다.

이주여성의 성폭력 범죄 노출이 체류 자격만의 문제일까.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 한국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에 응한 여성 이주노동자의 10.7%가 성폭행·성희롱 피해를 당한 적이 있었다고 응답했다.(2013년 이주민방송과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 조사)

이주여성 노동자의 54.8%가 성희롱 예방교육 의무 사업장이 아닌 근로자 10인 이하 사업장에서 근로하고 있으며, 74.5%가 실제 성희롱 예방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근로자 30인 이하의 영세·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로하고 있다. 성폭력·성희롱의 개념이 없는 남성 동료 근로자에게 사회적 지지 기반이 없는 이주여성 노동자가 그대로 범죄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입국 후 취업교육을 받아야 하나 교육 내용은 한국어와 한국의 직장문화와 생활방식 등에 국한돼 있을 뿐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교육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주여성이 성희롱·성폭력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부당하다고 느끼더라도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다.

합법적으로 취업한 이주노동자는 근로계약 기간 내에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으며,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변경할 수 있도록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예외적 상황에 성희롱·성폭행은 명시돼 있지 않다. 성희롱·성폭행 사건이 발생해 사업장을 변경하고자 해도 이를 관할하는 고용센터에서는 모든 입증 책임을 이주여성에게 미루기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 이주여성은 수치심과 좌절감을 느끼고 그대로 미등록 체류자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부 시민단체에서 자발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업주와 동료들에 대한 교육이 선행돼야 할 것이며, 10인 미만 사업장이라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실제 실시하는지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또 이주노동자에게도 모국어 교육을 통해 성희롱·성폭력 발생 시 대응방안과 구제절차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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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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