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의 ‘제물’이 된 네팔 노동자

등록 : 2013.09.26 20:01 수정 : 2013.09.26 22:23

임금체불·여권압수 등 학대 심각
하루종일 물·음식 공급 않기도
악조건 탓 두달만에 40여명 숨져

중동의 석유 부국이 화려한 지구촌 축제를 준비하는 동안, 최빈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꽃 같은 목숨을 사막에 묻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25일 202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카타르에서 축구경기장과 도로 건설 등에 노예처럼 동원돼 살아가고 있는 네팔 노동자들의 삶을 심층 보도했다. 어떤 노동자들은 50℃가 훌쩍 넘는 사막에서 하루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일했고, 어떤 이들은 한 방에 12명씩 몰려있는 불결한 숙소에서 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임금을 몇 달씩 주지 않거나, 여권을 가로채고 신분증을 발급해주지 않아 불법 체류자로 만드는 고용주들도 많았다. 학대를 견디지 못한 네팔인 30여명은 대사관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가혹한 노동조건은 올여름 수십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카타르의 네팔대사관 자료를 보면, 6월4일부터 8월8일까지 두달 동안 최소한 44명이 숨졌다. 이들 대부분은 젊은이들인데 과반수가 심장마비로 숨졌고, 나머지는 심장 발작 또는 사고로 세상을 떴다. 카타르 동부 해안도시 루사일에 지어지는 신도시 ‘루사일 시티’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한 네팔 노동자는 “이곳에 온 게 후회스럽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우리는 단지 먹고살려고 여기 왔지만 너무 운이 없었다”고 말했다. 람 쿠하르 마하라(27)라는 노동자는 “작업반장이 24시간 동안 음식을 주지 않아 항의했더니 그는 나를 때리고 합숙소에서 쫓아냈으며 임금을 주지 않았다. 나는 동료들에게 음식을 달라고 애원해야 했다”고 말했다.

2022년 월드컵을 앞두고 국토 개조의 야심을 품은 카타르는 1000억달러를 들여 경기장·도로·항구·호텔 등을 짓고 있으며, 150만여명의 노동자들을 이 공사 현장에 투입했다. 카타르는 노동력의 90% 이상을 이주노동자에 의존하는 나라로, 이 가운데 네팔인들이 카타르 전체 이주노동자의 40%를 차지한다.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월드컵 공사 현장에서 엄격한 노동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직업 알선 브로커, 하청업자, 시행사, 인력회사 등 이주노동자들을 둘러싼 복잡한 먹이사슬을 거치며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네팔 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인 우메시 우파드야야가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에 오는 수백명 축구선수들이 극한 더위에 지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사막의 열기 속에서 매일 축구 한 게임(90분)의 8배에 이르는 시간 동안 일하는 노동자들의 피땀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