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호소 “한국 공무원은 눈이 없다”
  • 입력:2013.10.28 18:52

체불임금 해소와 산재 예방에 내·외국인 차별 없어야

국정감사 사상 첫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증언을 통해 그들의 열악한 노동실태와 부실한 감독체계가 드러났다.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딴 소푼씨는 지난해 6월 입국해 1년간 전남 담양의 한 딸기 농장에서 계약서상의 월 226시간을 훌쩍 넘긴 320시간씩 일했지만 초과근로수당을 받지 못했다. 소푼씨는 일요일도 거의 없이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고도 월 9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시간당 2700여원으로 지난해 최저임금 4580원의 60%에도 못 미친다.

이 정도면 노동법 위반을 넘어 인권침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소푼씨가 낸 진정에 대한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의 처리 내용이다. 그는 최저임금 및 근로계약 위반 진정서를 냈지만 법정 초과근로수당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40만여원밖에 못 받았다. 사업장 변경 신청도 했지만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그가 작성한 근로일지와 일하는 장면의 영상, 사진 등은 근로시간을 산출하는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2개월간 근로감독관의 조사는 한 차례뿐이었고, 그것도 적절한 통역 없이 진행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14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소푼씨가 단 2분간의 증언을 한 뒤 광주노동청의 태도가 돌변했다. 노동청은 24일 그에게 사업장 변경을 허가해주겠다고 밝혔다. 광주노동청에 대한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시점이라는 게 과연 우연인지 모르겠다. “한국 공무원은 눈이 없어요. 눈앞에 증거를 보여줘도 믿어주지 않았어요”라는 소푼씨의 호소는 우리의 노동행정은 물론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보호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다.

소푼씨가 이주노동자 가운데 특수한 경우는 아니다. 노동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체불임금 해결률은 전국 평균 47.1%인 반면 외국인 노동자의 그것은 42%에 그쳤다. 특히 광주지방 외국인 노동자의 체임 해결률은 24.5%로 매우 저조했다. 산업재해율도 내외국인 간에 뚜렷한 격차를 보였다. 외국인 노동자의 재해율(100명당 재해자 수 비율)은 2008년 0.76%에서 지난해 0.99%로 최근 5년간 30% 늘었다. 같은 기간 내국인 근로자 재해율은 0.76%에서 0.58%로 24%가량 감소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주노동자의 인권 침해에 대한 고용노동청의 부실한 조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체불임금이 계속 늘어나는 바람에 일선 근로감독관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고용센터 상담원까지 체불임금 처리 업무에 매달리는 상황이다. 제도적으로 노동청 인력을 늘리거나 체불임금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고의적·상습적 체불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통역 제공이 가능한 단체나 기관들과 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출신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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