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 폭력 피해 여전…체류자격 보장해야"

 

제7회 세계인의 날 기념 서울시 토론회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이주여성 A(21) 씨는 2년 전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오토바이 배달업을 하던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 아들이 생긴 뒤에도 남편의 폭력이 되풀이되자 지난해 12월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두 달여 뒤 남편은 이혼 문제를 상의하자며 A 씨를 집으로 유인한 뒤 술을 마시다 A 씨의 왼쪽 눈 핏줄이 터지도록 주먹질을 했고,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와 휘두르며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 A 씨는 맨발로 뛰쳐나와 행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3개월 전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쉼터에 입소한 한 결혼이주여성의 이야기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인미란 센터장은 20일 제7회 세계인의 날을 기념해 서울시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주최로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이주여성 폭력실태 및 예방토론회'에서 A 씨 등 이주여성들이 겪은 끔찍한 경험에 대한 상담 사례를 발표했다.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도 결혼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이 1990년대 중반 시작돼 20여 년이 되어가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이 처한 열악한 인권 상황과 빈번한 가정폭력 피해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이선 상임연구원은 '폭력 피해 이주여성의 실태와 정책 현황' 발표에서 "여성결혼이민자들의 폭력 피해는 2000년대 중반 사회적인 관심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해 활발한 연구와 실태조사가 이뤄졌지만, 2009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을 기초로 한 조사에서는 가정폭력이나 인권침해 관련 문항이 설문에 포함되지 않아 현재 실태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이들이 이혼을 생각하는 중요한 원인이 가정폭력과 인권침해라는 사실로 미뤄짐작해 보면, 결혼이민자들이 처한 가정폭력 문제는 나아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의 상담 통계를 보면 전체 5천3건 중 이혼 문제 상담이 26.2%로 가장 많았고 이어 가출(21%), 체류 문제(13.1%), 부부갈등(11.7%), 가정폭력(8.4%) 순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황정미 교수는 그러나 "이 통계는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이주여성들이 이혼을 고민하고 체류 자격이 문제가 되는 등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가장 심각한 폭력뿐 아니라 일상에서 고통받는 부분이 다 인권침해"라며 "보편적인 인권 의식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들은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려면 이들의 체류자격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김이선 상임연구원은 "배우자의 비협조로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한 결혼이민자들은 가정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배우자가 신원보증을 철회해 불법체류 상태로 전락할 우려 때문에 참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현재 제도상 구제 조치가 가능한 가정폭력 피해는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심각한 육체적 폭력 피해 등에 한정돼 있다며 "실제 가장 빈번한 성적 괴롭힘, 인격 모독과 언어폭력,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 취업 강요와 임금 갈취 등은 가정폭력이나 인권 침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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