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 필리핀 대사관 홈페이지에 최근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안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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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급기야 9일 "남한 내 외국인 철수"까지 언급했다. 전쟁이 나면 피해를 볼 수 있으니 피하라는 것. 요즘 국내 취업 중인 이주노동자나 귀국한 이주노동자 혹은 외국인들로부터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한국에 전쟁 일어나요? 진짜 전쟁 나요?" 이런 질문을 해외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들을 때는 그냥 웃으면서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듣느냐고 반문하고 만다. 그러나 국내에 있는 이주노동자들로부터 대면하여 질문을 받을 때면 참 난감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인데, '난다, 안 난다'라고 딱 잘라 말하려니 뒷일을 감당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어물쩍 넘어가려니 질문을 던진 사람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다.

이럴 때 난감한 상황을 피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에 바로 답하기보다는 되묻는 것이다. "전쟁 나면 도망갈래요? 전쟁 나면 도망갈 수 있어요?"라고. 그러면 질문을 던진 이주노동자의 표정이 금세 달라진다. 전쟁이 일어날지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지만, 정작 전쟁이 일어나면 도망갈지 그리고 도망은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지, 멋쩍게 웃고 만다. 아마 그 질문을 받은 이주노동자는 한참 그 고민을 할지 모른다. '도망을 가야하나? 도망은 가야겠는데, 언제, 어떻게 가지'에 대해.

내가 "전쟁나면 도망갈래요? 전쟁나면 도망갈 수 있어요?"라고 질문을 던진 이유는 '피난'이라는 말이 어려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불안에 떨면서 고민할거면 전쟁 일어나기 전에 미리 보따리 싸들고 귀국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반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한반도 전쟁 위기 관련한 국내외 보도에 대해 국내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입장이고, 그들을 파견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어떤 반응일까 궁금해진다.  

전쟁 위협에 불안에 떠는 외국인?

개인적인 경험을 들어 현재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어떤지 가늠해 보고자 한다. 90년대 초중반,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3년 반을 생활했던 경험이 있다. 필리핀에 갔을 당시는 인터넷은 물론이고, 국제전화를 하려면 전화방에 가서 줄을 서서 전화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통화를 하다 보면, 해외에 있는 사람보다 더 해외 현지 소식에 정통한 듯한 말을 듣곤 깜짝 놀란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필리핀에서 총격사건이 있었다던데... 필리핀에 태풍피해가 크다던데...필리핀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던데...필리핀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났다던데..." 등등 치안불안과 자연재해 관련 소식이 어떻게 그리 빠르게 전달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땅덩어리만 해도 한반도의 1.3배가 넘고, 7천개가 넘는 도서와 바다면적까지 하면 전국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자연재해와 지역의 치안관련 소소한 사건들이 큰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필리핀 소식으로 다룬 지진이나 태풍 등의 자연재해도 전국적인 규모의 자연재해가 아닌 경우가 많고, 치안관련 사건 역시 지역 언론에서나 다룬 뉴스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현지에서 듣기에는 한국에서 전해지는 소식들이 뜬금없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걱정하는 사람들 안심시키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험은 인도네시아에 체류할 때도 비슷했다.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는 이름 자체가 활화산이라는 뜻의 산 중턱, 해발 1천 미터에 살았고, 매일 같이 용암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화산 폭발 위험은 일상이었지만, 그게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한 적이 없었다. 수천 년을 그곳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늘 덤덤하게 생활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살겠다는 사람이 '화산 폭발하는 거 아니냐고?' 호들갑을 떤다는 것이야말로 이상할 일이었다. 반면 활화산 중턱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험 증가와 관련한 보도를 접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전쟁 일어나요?'라고 질문을 던지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국내 체류 기간이 긴 이주노동자들일수록 언론 보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많은 한국인들이 CNN 같은 해외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것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느끼기 때문이다.  

주한 외국 공관들, 차분한 대응 주문

마치 전쟁이 금방이라도 날 것처럼 연일 보도하고 있는 뉴스전문채널, CNN을 받아쓰기 하는 일부 국가가 보기에 한반도는 전쟁 위기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1일 필리핀 상업방송으로 해외취업 이주노동자들에게 인기 있는 방송인 GMA뉴스와 필리핀 최대 민영방송인 ABS_CBN 등 주요 필리핀 방송은 외교부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약 4만 명(42,057명: 출입국 통계 2월말 기준)에 달하는 한국 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 1단계 주의보가 내려진 상태라고 밝혔다. 비록 필리핀 외교부는 현재 필리핀 여행객의 한국 여행 금지 등 조치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한국내 필리핀 교민들에게는 대사관 사이트를 방문, 비상시 대응계획을 확인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반면 주한 필리핀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관련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주한 필리핀 대사관이 평소와 다름없는 정상 업무를 하고 있어 한반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본국 외교부와는 상당한 온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태국도 비슷하다. 태국 정부는 지난 달 31일 주한 태국 대사관에 자국민 대피 계획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태국 자국민 대피 계획은 한반도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부산 등지에 임시대피소를 설치하는 것과 일본 등 인접국으로 대피하기 위한 선박과 항공편 마련 계획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주한 태국 대사관은 지난 4월 1일자로 한반도 현 상황을 우려하는 태국 공동체 및 태국인들에게 전하는 안내문을 발표했다. 이 안내문은 자국민 대피 계획 마련을 지시한 본국 정부의 우려와는 다른 정세 판단을 담고 있었다.

주한 태국 대사관, 일상 업무 강조한 이유

안내문에 의하면, 1. 현재 한국 정부가 어떠한 형태의 경계 혹은 경고를 발표하거나 올리는 발표를 하지 않았다. 2. 한국 내 모든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비록 얼마 전 한국 주식 시장이 하락세를 보이며 마감하긴 했으나, 이는 세계경제 위기에 따른 것이지, 한반도 상황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3. 한국인들은 매일매일의 업무를 평시와 다를 바 없이 어떠한 공포 없이 진행하고 있고, 생활도 일상과 다를 바 없다. 4. 보도에 따르면 한국으로 오는 모든 상업용 항공사들과 관광객들이 예약된 일정을 취소하지 않고 오고 있다.

안내문은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현재 단계에서 공포나 염려를 할 것이 없다고 보고, 일상 업무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월말 출입국 통계에 의하면, 국내 체류 태국인은 4만 3천 명이 넘는다. 주한 태국 대사관은 이 안내문을 국내 체류 태국 공동체 등을 통해 안내하고 있고, 대사관 업무를 일상과 다를 바 없이 보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주한 태국 대사관의 안내문은 거의 대부분 주한 외교관이 취하고 있는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안내문은 현재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자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일상생활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세 분석 보고서라고 보면 된다. 본국 외교부와 주한 외교 공관들의 대응에 온도 차가 있는 이유는 결국 현장에 대한 이해의 차이라고 본다.

필리핀이나 태국처럼 자국민 보호를 위해 대피 계획을 세웠다고 하는 나라들은 현지 교민들과 긴밀하고 정기적인 연락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국민 보호를 위한 비상대책 수립은 주권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발표는 당연한 것이다. 다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필리핀이나 태국의 경우, 국내 체류 자국민이 4만 명이 넘는다. 그 많은 인원을 일시에 후송하려면 항공모함 정도는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에서 항공모함을 운용할 수 있는 국가는 손으로 꼽는다. 선박 제조 능력이나 기술면에서 세계 제일인 우리나라도 항공모함은 없다. 항공모함을 운용하려면 어지간한 경제력으로는 어렵다.

이주노동자 송출국들이 자국민 대피를 위해 항공모함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각국 공관들이 세웠다고 하는 대피 계획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즉 한반도를 빠져나가는 것을 우선 목표로 하기보다, 특정 지역에 결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외국인 대피소를 북이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느냐가 중요

▲ 주한 태국 대사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안내문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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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이라는 말처럼 전쟁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든,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이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다만 과도한 긴장 혹은 공포는 일상 업무마저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전쟁 경험은 한 세대가 다 지나도 해소되기 어려운 상처다. 눈앞에서 폭탄이 터지고, 죽고, 누군가의 사지가 절단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을 겪었던 이들은 전쟁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베트남 전쟁을 겪었던 베트남인들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 보도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난주에 친정댁에 갔다 온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에게 그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답변은 아주 의외였다. 이 여성은 보름 동안 베트남에 있었는데, 한국 뉴스는 관심이 없고, 드라마만 관심이 있어서 전쟁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주위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오려는 사람들은 전쟁에는 관심 없고, 현재 중단 중인 고용허가제 입국을 위한 한국어능력시험이 언제 다시 시작되느냐는 것 정도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 맞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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