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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갈 데 없는 이주노동자들 “아부지 찾아와 쉬어요”

등록 :2016-01-24 19:51수정 :2016-01-25 09:29


지역 현장 I 올해 20돌 광주 외국인노동자센터
지난 20일 낮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무등교회 2층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부설 쉼터에서 이철우(왼쪽 넷째) 목사와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점심을 함께하고 있다.
지난 20일 낮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무등교회 2층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부설 쉼터에서 이철우(왼쪽 넷째) 목사와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점심을 함께하고 있다.
“다치지 마. 아프지 마.”

지난 20일 낮 12시20분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무등교회 2층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부설 쉼터에서 이철우(65) 목사가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9명에게 말을 건넸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이날 닭 카레와 감자요리 등 스리랑카 음식 네 가지를 준비했다. 김치도 한켠에 놓여 있다.

센터는

이철우 목사 1997년 인권 위해 설립
작년 10여개 나라 2648명 머물다 가
시 보조 연1500만원…인건비도 안돼

이주노동자들에겐

실직·산업재해·체불로 방황할 때
24시간 열려 있는 “친정집” 같아
“이곳은 진짜 좋아요, 마음 편해서”

이철우 목사는

70년대 반독재운동으로 옥고
무등교회 맡아 노동자 지원하기도
“이주자, 사회 일원으로 존중해야”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인 이 목사는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몇 바늘 꿰맸어?” 왼손 엄지에 붕대를 한 스리랑카 노동자 라산따 라닐(32)은 서툰 한국어로 “열 바늘이요”라고 답했다. 그는 인천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다쳐 회사를 쉬게 돼 이 센터로 와 2주째 살고 있다.

올해 설립 20년을 맞는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는 머물 곳 없는 이주노동자들에게 365일 쉼터를 개방한다. “실직당했거나, 산업재해를 입고 체류 중이거나, 임금을 못 받았거나, 회사에서 나와 갈 데 없는 친구들”이 이용한다. 문은 24시간 열려 있다. 이들에게는 언제든 편히 올 수 있는 “친정집”이고, 이 목사는 “아부지”다. 하루 평균 10여명이 머문다. 몸이 아픈 환자에겐 협력병원을 통해 의료보험과 같은 혜택을 받도록 하고 있다. 전남 장성의 한 파이프 공장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4월 오른손 손가락 하나가 반쯤 잘려나간 차리뜨 마노하르(30)는 지난달부터 쉼터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산재 처리를 했는데 장애등급을 낮게 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재심을 청구할 생각이다.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부설 쉼터 벽에 붙어 있는 각종 사진.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부설 쉼터 벽에 붙어 있는 각종 사진.
“한국엔 언제 오셨어요?”라고 연두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한 스리랑카인에게 말을 걸자, 그는 “아, 오래됐어요. 청춘이 다 갔어요”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아짓(42)은 “이곳 진짜 좋아요. 마음 편하니까요. ‘노나’(누나)도 감사해요”라고 했다.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쉼터 팀장 임세미(55)씨를 노나라고 부른다. “스리랑카 말로 노나는 존경하는 사람에게 부르는 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더더욱 누나라고 부르라 했죠.” 2001년부터 센터에서 평신도 사역을 하고 있는 임 팀장은 “유리처럼 투명하게 일하면서 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 목사님의 따뜻한 마음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1997년 9월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는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출발했다. 95년 네팔 출신 한 노동자가 든 손팻말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때리지 마세요. 우리도 사람이에요.” ‘3D 업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기자회견장에서 잘린 손가락을 보여주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들여와 ‘현대판 노예’처럼 부린다는 비판이 쏟아졌던 시기지요. 신분증을 빼앗고, 잠을 안 재우며 일을 시키고요. 착취한 것이지요.” 경기도 성남과 안산, 광주광역시 등지의 인권·사회단체들이 이 문제를 보듬고 나섰다. 전국 50여 개 단체들은 한국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를 꾸렸다. 광주에선 이 목사가 참여했다. 그는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이 목사가 이주노동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삶의 궤적과 무관하지 않다. 모태신앙인으로 목포고를 졸업하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을 마친 뒤 전도사로 활동하던 그는 197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빈민지역과 노동자 문제에 관심 갖고 현장으로 가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민중교회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던 때였지요.”

하지만 그에게 80년 5·18항쟁은 큰 충격이었다. 항쟁 직전 수배 상태였던 그는 광주로 들어와서도 시민군에 합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괴감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그해 11월 서구 농성동 광천공단 인근에 있던 무등교회 전도사가 됐다. 후배들과 함께 5·18 구속자들의 삶을 조사하고, 무등교회에서 무등터야학을 시작했다. 5·18항쟁 때 큰 역할을 했던 들불야학의 맥을 잇는 작은 공동체였다.

그러다가 82년 한신대 신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무렵 고민을 많이 했다. “광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광주 신가동 한 주물공장에서 1년 동안 노동자로 일하다가 87년 8월 무등교회 담임목사를 맡게 됐다. 무등교회는 5·18 이후 광주에서 노동운동을 지원했던 도시산업선교회의 역할을 맡아왔다. ‘한국 기독교 노동자 광주지역연맹’(기노련) 설립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김상집(60)씨가 무등교회로 옮겨오면서, 무등교회는 광주의 대표적인 노동운동 지원현장이 됐다.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는 전도 목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 쉼터 안에 뒀던 십자가도 치웠다. 무슬림이나 불교도 등의 입장을 존중하자는 생각 때문이다. 해마다 4월 우리나라의 설과 같은 명절을 지내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위해 떡국 잔치를 연다. 스리랑카 출신 스님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목사는 2013년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2005년 6월엔 광주외국인근로자선교회, 광주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 광주전남지부, 기독병원 의료봉사단, 선교단체 소속 의사들과 힘을 모아 광주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를 설립했다. 이금호 건치 광주전남지부 진료부장은 “이 목사님이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각 단체와 만나 진료 방안을 체계화할 수 있도록 논의하자는 안을 냈다”고 회고했다.

쉼터엔 지난해 스리랑카, 캄보디아,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 10여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 2648명이 머물렀다. 이주노동자들의 이용이 활발한 것은 이곳이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이주노동자로서 삶을 헤쳐 나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04년 8월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은 3년 동안 일할 수 있고, 1년10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김응규(46)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상담실장은 “한국에서 취업하기 위해 빚을 많이 지고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체류 기간이 짧다 보니 눌러앉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미등록 외국인노동자가 되면 임금도 적어지고, 퇴직금 손해도 본다. “임금 못 받은 노동자와 고용노동부에 찾아가 업주를 고발하면, 사업자가 불법체류자라고 신고하기도 해요. 그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이지요.”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는 광주시에서 연 15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인건비 충당조차 힘들다. 200여명이 월 5천~1만원씩 내는 후원금으로 해결한다. 그게 큰 힘이 된다.

“대부분 학벌도 좋아요. 한국어까지 3개국어도 가능하고요. 그런데 한국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요. 단지 돈 버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 목사는 “일부 이주노동자들이 사회적 일탈을 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에 이주노동자들이 애정을 갖게 하지 못하는 문화적 배경이 있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을 더불어 함께 사는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이 목사가 20년째 이주노동자와 함께 지내며 지켜온 생각이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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