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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칼럼] 누가 트럼프의 국회 연설을 허했는가?

등록 :2017-10-30 17:13수정 :2017-10-3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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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선임기자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트럼프의 영국 방문과 의회 연설 논란이 겹쳐졌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영국 왕실은 그를 국빈으로 초청할 의사를 밝혔고, 테리사 메이 총리가 지난 1월 말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에게 이를 제안했다. 영국의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난리가 났다. 취소하라는 청원이 영국 정부 공식 청원사이트에 올라와 일주일 만에 180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1분에 1천명 이상이 서명을 한 적도 있다.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태도를 들어 의회 연설을 반대하는 이례적인 성명을 냈다. 트럼프가 국빈 방문을 하면 의회 연설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사전에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었다. 그는 “외국 지도자가 영국 상하원에서 연설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다.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영국 방문은 내년으로 연기됐으나, 의회 연설은 고사하고 방문 자체가 아직도 불투명하다. 트럼프는 영국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면 방문하지 않겠다고 하자, 영국 쪽에서는 ‘생큐’라는 반응이 나왔다.

유럽연합 탈퇴로 미국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영국에서 트럼프 비하는 현실적 국익을 훼손하는 철없는 행동인가? 잘 모르겠다. 적어도 트럼프의 의회 연설에 대한 반대는 현실적으로 옳았다. 일방통행적인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에게 의회 연설 기회를 줄 경우 영국도 고스란히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가 영국 의회에서 미국 일방주의를 강조하거나, 평소에 비판적이던 유럽연합의 유럽통합 정책을 비판하거나, 무슬림 국가 출신 이민자 입국제한 문제를 정당화하거나, 중국의 환율이나 무역 정책을 비판하거나, 멕시코 장벽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면 어떡할 것인가?

트럼프의 평소 성향과 태도로 보아서 그의 의회 연설은 영국에는 ‘잘해도 본전 건지기 힘든’ 내용이 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의 의회 연설이 결정된 순간부터 영국은 그 조율을 놓고 엄청난 외교력을 낭비해야 한다. 그 순간부터 영국은 트럼프의 페이스에 말릴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수법에 전형적으로 당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한국 국회 연설을 놓고 외교적 성과라고 자찬하는 소리가 들린다. 일본이나 중국 방문에 비해 짧은 1박2일인 그의 한국 방문이 ‘한국 무시’라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서둘러 ‘한국은 트럼프가 유일하게 의회 연설을 하는 나라’라는 점을 들었다.

방문 기간이 짧은 것이 한국 무시라는 비판도 사대주의 발상이지만, 트럼프의 국회 연설을 외교적으로 한 건 한 것처럼 자랑하는 거는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한다. 한국은 트럼프에게 국회라는 공식 마당을 내준 이상 그가 거기서 한 발언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

만약에 트럼프가 한국 국회 연설에서 북핵 대처를 이유로 한·미·일을 하나로 묶는 군사동맹, 즉 동북아 나토 창설을 주장하거나, 대북한 양자적 응징 조처를 취하라고 중국에 촉구하거나,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한다면 어떡할 것인가? 북핵 문제, 방위비 등 동맹 문제, 무역문제 등 양국 사이의 모든 문제에서 트럼프의 평소 입장과 언급은 한국 정부에 부담이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가 원론적인 발언을 하는 정도로 조율을 하는 데도 엄청난 외교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에서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에 국제사회의 동참을 요구하는 정도로 수위를 조절한다 해도 현재의 한국 입장에서는 본전 건지기 힘든 장사를 한 것이다. 한국 정부를 배려하는 발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불확실성을 놓고 국회를 내줘야 하는 건가?

26~27일 열린 제13회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변화와 문재인 정부의 과제’에 참석한 토론자들 다수도 이런 우려를 표명했다. 그저 트럼프가 국회 연설에서 한국을 곤혹스럽게 하는 사고를 치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는 의견이었다.

트럼프는 여태까지 외국 의회에서 연설한 적은 없다. 외국 정부들이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미 관계가 갑을관계라 해도 을이 계속 ‘을’로서 자처하는 한 그 관계는 바뀔 수 없고, 갑의 횡포에 더욱 시달리게 된다.

선임기자 Egi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6669.html#csidxc5f6f99a82c8e228a4de01a7c9a83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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