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노동자 '쉼터' 이대로 사라지나
'잠자리·끼니 걱정 없도록' 바수무쿨 4년 전 마련
계림 2구역 재개발로 철거 위기… 갈 곳 없어 막막
입력시간 : 2017. 11.07. 00:00


바수무쿨(사진 왼쪽) 유니버설문화원 원장이 숙식이 필요한 외국인노동자 스리랑카인 삼바트씨에게 '쉼터'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6일 오후 광주 동구 계림동의 한 주택가. 두 사람이 마주 지나기도 버거운 비좁은 골목 끝에 위치한 단독주택 한 채.

"여기가 당분간 먹고 잘 곳이야. 라이스(쌀) 여기 있고, 칠리파우더(고추가루)랑 양념은 싱크대 위에, 냉장고 속 재료는 뭐든 다 먹어도 되는 거고. 이건 돼지고기, 포크(돼지고기) 괜찮아? 이츠 오케이?" 

분명 외국인인데 꽤나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중년의 남성이 또 다른 외국인에게 집안 곳곳을 설명한다.

"여기 빅 룸(큰 방)은 남자들이 쓰고, 저기 작은 방이랑 뒷 방은 포 우먼(여자용)이니까 가지 말고. 또 여기는 내 방. 그러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똑똑똑' ok?"

한국어 반, 영어 반에 몸짓, 손짓, 발짓까지 동원한 중년 남성의 설명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네, 네", "알아요, 알아". 시원시원한 답으로 화답한다. 

대화의 주인공은 국내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빅브라더' 바수무쿨(53) 유니버설문화원 원장. 지난 1년여 동안 진도의 한 어가에서 낙지잡이를 하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광주로 온 스리랑카인 삼바트(40)씨에게 외국인노동자들의 휴식공간인 '쉼터' 시설을 소개하는 중이다. 

"고맙습니다" 삼바트씨가 연신 감사를 전한다. 

하지만 인사를 받는 바수무쿨 원장의 표정이 썩 밝지 않다. "걱정이 있어 보인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앞으로 더 몇 명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이 쉼터의 공간을 제공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입을 뗐다. 

그러고 보니 '쉼터'를 찾아오는 골목 어귀마다 걸려있던 플래카드가 떠올랐다. 

'관리처분을 위한 임시총회. 계림2구역주택개발정비사업조합'. 


예상이 맞았다. 유니버설문화원이 마련해 운영 중인 외국인노동자 쉼터를 포함해 이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확정된 것.

바수무쿨 원장은 "4년여 전 어렵게 구한 쉼터 공간이 늦어도 내년 3월이면 철거된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허름한, 오래된 주택 한 채겠지만 임금 체불과 폭행, 또는 다른 이유로 잠시 갈 곳이 없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는 온기가 있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다"며 "대체 공간을 마련 할 여유도, 여지도 없어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2014년, 단지 피부색이 짙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당하고 문화적 차이에 의해 소외된 외국인노동자들의 임시거처를 고민하던 바수무쿨 원장은 지인을 통해 이 공간을 마련했다. 잠자리와 끼니만이라도 걱정 없이 미래를 꿈 꿀 새로운 일터를 찾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광주시지회와 광주재능기부센터도 뜻을 모아 여러 개의 화장실과 욕실, 부엌 등을 갖춘 시설로의 재탄생을 도왔다. 광산구 소재의 기업체 ㈜한백이 쾌척한 성금 500만원으로 50개월 치 사글세도 마련할 수 있었다. 

대부분 무더운 나라에서 오는 이들이 많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한 달에 많게는 50만원 상당의 기름 값이며 식재료 값을 감당하기에 버거울 때도 많지만 그때마다 도움의 손길로 버텼다고 바수무쿨 원장는 설명했다. 

덕분에 '쉼터'는 지난 4년간 한 달 평균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20~30여명의 외국인노동자들을 품에 안아왔다. 

지난 10여년 바수무쿨 원장이 광주에서 맺은 인연으로 맺은 협력병원을 통해 의료보험과 같은 혜택도 받도록 하고 있다. 

바수무쿨 원장은 "가깝게는 동네 삼계탕 가게에서 닭고기를 무한대로 제공해주거나 쌀이며 아시아 각국의 음식재료를 대량으로 보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며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이런 도움의 손길로 버텼는데 공간을 잃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고 한숨지었다. 

그러면서 "외국인노동자 꿈의 보금자리가 어떻게 든 이어지도록 많은 관심이 절실한 때다"고 말했다. 

주현정기자 doit850@gmail.com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