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폭행 어쩌지 못하는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
다문화정책 10년 점검 ● 외국인 노동자 인권 지켜주는 광주유니버설문화원
인도 출신 바수무쿨 원장 운영
유학생 돕다 노동자도 챙겨
툭하면 날아오는 주먹ㆍ욕설…
입력시간 : 2017. 10.26. 00:00


광주유니버설문화원은 노동력 착취와 인권 유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돕고 있다. 바수무쿨 원장과 진재영 노무사가 산재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와 보상 상담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유니버설문화원 쉼터에서 새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광주 유니버설문화원 제공
지난 2015년 목포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외국인 노동자 A씨가 잠자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와 같은방을 썼던 동료들은 A씨가 잠꼬대로 종종 "때리지 마세요" "잘못했어요"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목포지역 한 중소기업의 공장에서 일을했던 A씨는 평소 사업주로부터 잦은 폭행과 폭언, 노동력착취에 시달렸다. 

사정이 마찬가지였던 A씨의 동료들은 대부분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A씨의 동료들은 "한 사람이 40㎏에 달하는 짐을 옮겨야 하는데, 몸이 아파 일의 속도가 느려지면 어김없이 사장의 욕설과 주먹이 날아왔다"며 "회사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 모두가 허리부상은 당연히 앓고 있었고, 상당수가 사장의 폭언이 환청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을 호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주유니버설문화원이 인권위원회와 노무사를 통해 어려움 해결에 나섰던 것은 이 사업장에서 일을 했던 일부 외국인노동자들의 용기 때문이었다.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환청으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해 보였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유니버설문화원은 폭행일지를 기록하고, 현장을 녹음하거나 녹화하도록 했다. 인권유린 현장이 녹음기와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되자 사업주는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에 대한 허락을 내렸다. 

이후 이 노동자들은 유니버설문화원 내 외국인노동자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새로운 사업장들을 소개받고 적성에 맞는 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바수무쿨 광주유니버설문화원장은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사업장을 선택하거나 이직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라고 비판받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외국인노동자는 매년 국가별 쿼터에 따라 일정 수가 한국으로 유입된다. 정부는 노동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전국의 산업단지에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를 배정한다. 노동자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까닭에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장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용허가제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고 있는 '사업장 변경 제한' 때문이다.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4년10개월간 체류할 수 있고, 이 기간동안 총 5번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단 사업주의 허락이 있거나 휴업ㆍ폐업, 근로조건 위반 등의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사업주의 노동력착취, 인권유린 때문에 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기고 싶어도, 사업주가 이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옮길 수가 없는 것이다. 

바수무쿨 원장은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변경에 대한 자유가 없기 때문에, 사업장에서는 툭하면 때리고 욕하는 등 인간다운 대접이 없는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노동력 착취와 인권유린 등 '전과'가 있는 고용주는 향후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현실에선 이 원칙이 우습게 무시되곤 한다. 5인 이하의 가족기업 형태의 사업장이 가장 문제라고 바수무쿨 원장은 전했다.

남편과 아내, 외국인노동자 3인으로 구성돼 있는 기업이 노동력 착취로 처벌을 받게 될 경우, 이 사업장의 소유주를 아내나 자식들 명의로 바꾸면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바수무쿨 원장은 "가족명의로 사업주를 계속 바꿔가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 노동력 착취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니버설문화원은 광주에 거주중인 유학생의 적응을 돕고, 이들을 통해 광주와 해외 여러국가의 문화교류를 위해 지난 2007년 설립됐다. 

인도 출신으로 한국으로 유학 온 바수무쿨 원장은 취지에 따라 광주의 국제문화교류 활동을 해오던 중 어려움을 호소할 데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난민들이 유니버설문화원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일을 하게됐다. 

유니버설문화원에 도움을 요청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광주에 거주하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점차 대구, 부산, 수원 등 전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찾아오면서 지금은 매년 30여건 이상의 일을 처리하고 있다.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도맡아 처리해 줄 수 있는 기관이 부재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바수무쿨 원장은 "유니버설문화원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하는게 나의 소망"이라며 "다행히도 광주에서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나서지 않으면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상지 기자 sjpark@jnilbo.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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