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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노예제'라 불리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내 일부 고용주들은 직장 변경의 자유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금품을 갈취했다. 이들은 고용변경 허가 문서에 서명해주는 대가로 300만 원에서 500만 원씩을 뜯어냈다.

한국 회사에 금품을 건넨 외국인 노동자가 이 회사에서 받은 월급은 140만 원. 이들은 받은 월급 중 100만 원은 가족에게 보내고 나머지 40만 원은 기숙사비와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회사 사장과 관리자는 "돈이 없다"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오라고 되레 큰소리쳤다. <충북인뉴스>가 입수한 동영상에는 외국인 노동자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돈으로 사고파는 현장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다른 회사 가고 싶으면 500만원 갖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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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딴데 디퍼런트 컴퍼니 가고 싶으면 500만원 갖고 와 … (중략)… 다른 공장 못 가. 센터 가서 돈 빌려갖고 오라고. 내일 빌려와. 내일 센터 가서 돈 빌려오고…(중략)… 안 그러면 이미그레이션(출입국관리사무소) 갈 거야. 이미그레이션 가면 바로 스리랑카야. 1000만 원 이면 많이 봐주는 거야."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한 플라스틱 가공공장의 관리자는 거침없이 말했다. 이 관리자는 "냄새가 심하고 먼지가 많이 나 머리가 너무 아프니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게 해달라"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1000만 원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해 고국 스리랑카로 출국시켜 버린다고 위협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100만 원 없어"라고 말하자 "빌려 갖고 와"라며 "센터(외국인노동자 지원하는 단체를 지칭)가면 돈 빌려주잖아"라며 재차 금품을 요구했다.

며칠 뒤 외국인노동자는 이 회사 관리자가 요구한대로 500만 원을 가지고 왔다. 위 관리자는 처음엔 1000만 원을 언급했지만 최종적으론 각각 300만 원과 500만 원을 요구했다. 두 명의 외국인 노동자는 위 금액을 1만 원 권으로 사장과 관리자에게 전달했다. 영상에 따르면, 현금을 전달받은 이들은 손으로 돈을 하나 하나 세기 시작했다. 돈을 세던 이 회사 사장은 신경질이 났는지 갑자기 화를 냈다.

그는 "뭐 하자는 거야! 이거는 마! 카운트해서 묶어가지고 왔어야지. 이걸 이렇게 하면. 씨이. 이게 뭐냐!"며 큰소리를 냈다. 돈을 다 센 뒤에는 만족스러운 듯 외국인노동자를 바라보며 "하하하하! 너 끝까지 엿 먹인다. 하하하하. 셀 줄 몰랐나보지. 엿 먹이는데"라고 말했다. 뒤이어 선심 쓰듯 외국인노동자에게 "너희들 오후에 사인해 가지고 들어갈 테니까. 기숙사 퇴숙해서 나가도 돼"라고 말했다.

"출입국 관리사무소 가면 유 고투 스리랑카, 오케이"

지난해 3월 스리랑카 출신의 노동자 A씨와 B씨는 E9 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이들이 취업한 곳은 경기도에 있는, 플라스틱을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A씨와 B씨는 이 회사의 작업환경에 어려움을 겪었다. 먼지와 역한 냄새, 장시간 노동에 몸은 지쳐갔다. 급기야 일을 하기 힘들 정도로 두통이 몰려왔다.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A씨와 B씨는 지난 7월 회사에 "몸이 안 좋다. 힘들어서 도저히 안 되겠으니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사업장 변경허가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외국인노동자는 세 번까지 직장을 변경 할 수 있지만 사업주의 과실이나 동의 없이는 단 한 차례도 변경할 수 없다. 

이들의 요청을 받은 사업주는 냉정했다.

"500(만원). 여기서 먹고 쌀 먹고 슬립(잠)한 거. 500(만 원). 병원비까지. 오케이. 내일 센터 가서 돈 갖고 와. 안 그러면 이미그레이션(출입국관리사무소) 갈 거야. 이미그레이션 가면 바로 스리랑카야. 천만 원이면 많이 봐주는 거야. 천만 원! 계속 팔로우, 팔로우 하면 이미그레이션 가면 스리랑카 가야 돼. 유 고 투 스리랑카! 오케이!"

사업주의 위협은 계속됐다. 사업주는 "이미그레이션 가면... 팔로, 팔로 계속 하면(돈을 주지 않고 미루면) 계속하면 이미그레이션 데리고 갈 거야. 고! OOO고용지원센터 이런 거 없어. 노! 얘기하고 뭐고 없어. 이미그레이션 가서 바로 이거 하고 스리랑카 보내 버릴 거야"라며 돈을 빌려와서 내라고 했다.

며칠 뒤 두 명의 외국인노동자는 각각 300만 원과 500만 원을 회사 사장에게 건넸다. 물론 돈은 다른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빌렸다. 한달 140만 원을 받아 100만 원을 고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는 상황에서 사장에게 줄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봉건제에선 농노, 21세기 한국에선 고용허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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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제가 세상을 뜨는 이유는 건강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 (깨서브 스래스터 씨가 남긴 유서. 번역 청주네팔쉼터)

지난달 6일 새벽 4시에 꽃다운 나이인 27살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깨서브 스래스터(Keshav Shrestha)씨가 회사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료들은 그가 자살하기 전인 새벽 3시까지 그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의 극단적인 선택을 예감하지 못했다.

그는 유서에서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됐다"고 밝혔다. 그의 동료들은 결국 고용허가제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비판했다.

청주네팔쉼터 대표 수니따씨는 "한국 사람은 취직 후 회사를 옮기고 싶으면 쉽게 옮길 수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허가제 때문에 고용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지금 있는 회사가 좋지 않아도 마음대로 옮길 수가 없다"며 "직장 변경만 되었더라도 그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깨서브 스래스터씨의 죽음이 알려진 뒤 이틀 후 충남 천안시 한 돼지농장에서 일하던 26세의 또 다른 네팔노동자가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권단체들은 직장 변경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현대판 노예제'라 비판한다.

중세 유럽, 봉건제 하에서 농노는 영주가 소유한 장원을 떠날 수 없었다. 영주의 핍박에 장원을 탈출하다 적발된 농노는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농노의 딸은 결혼 첫 날밤을 의무적으로 영주와 보내기도 했다.

자본주의 초기 유럽의 열강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노예로 잡아가 돈을 주고 사고 팔았다. 21세기 한국의 고용허가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처음 취업한 회사에 묶여 직장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심지어 직장이동의 권리조차 돈으로 사고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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