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연행에 집단 저항...기묘한 마을 '마석'

[서평] 이주노동자 삶과 일상 세밀하게 기록 <우린 잘 있어요, 마석>
13.12.29 17:11l최종 업데이트 13.12.29 17:12l
 
기사 관련 사진
 <우린 잘 있어요- 마석> 책표지.
ⓒ 샬롬의집

관련사진보기

2005년 10월 17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의 가구공단에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점심을 먹으러 이주노동자들이 막 공장 문을 벗어날 무렵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순식간에 이주노동자 30명을 연행했다. 공단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샬롬의 집' 신부들이 "영장 제시 없이 위법적으로 단속이 이뤄졌다"이라며 이주노동자를 연행한 출입국관리사무소 차량을 막아섰다.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격렬하게 당국의 조치에 항의한 사람들은 공장주들이었다. 이들의 완강한 저항에 놀란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주노동자를 출입국관리소로 일단 데려가 신원확인 후 단순 미등록인 경우 내보내 주겠다며 협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공장주들은 "이왕 풀어줄 거면 여기서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협상안을 거부했다. 동료 이주노동자들 200여 명이 주변 초등학교에 모여 단체로 항의했고, 주민들도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9시간의 대치가 이어지고 동네 중국집에서는 자장면 100그릇을 무료로 보내 이들을 응원했다.

기사 관련 사진
 2005년 당시 마석 가구공단 불법체류자 단속 사건 관련 YTN보도
ⓒ YTN화면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방송 뉴스는 앞다퉈 마석 가구공단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단속 소식을 전했다. 이 사건은 폭력적인 단속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분노와 영세업종의 현실을 외면한 정부의 외국 인력 정책에 대한 공장주들의 불만이 맞물리며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국내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날의 마석 가구공단의 집단적 저항이 전설처럼 퍼졌다. 심지어 "마석에 가면 단속이 없고, 주민과 공장주들이 막아준다"는 소문이 돌았고 다른 지역 이주노동자들이 이곳으로 몰려왔다. 

이주노동자와 공장주, 마을주민의 기묘한 공생관계

마석 가구공단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과 공장주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똘똘 뭉쳐 정부에 맞선 계기는 단순하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경제란 먹고사는 것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단단하다. 이처럼 마석을 삶 터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와 공장주,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기묘한 공생관계를 조명하는 책이 있다. <우린 잘 있어요 마석>(아래 마석)이다.

남양주에서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해 노력해 온 '샬롬의 집(남양주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이 기획하고 작가 고영란과 이영 신부(샬롬의 집 사무국장)가 1년여 동안 마석가구공단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일상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마석가구공단의 정식 명칭은 '성생공단'이다. 400여 개의 가구 공장이 밀집해 있는 국내 최대의 가구공단이다. 대부분 열 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공장에서 80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가구를 만들고 있다. '샬롬의 집'에 따르면 마석 가구공단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는 미등록 상태다. 보통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초보 여성 노동자의 경우 120만 원, 5~10년 된 남성 숙련공이 18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인 3D 업종

가구제조업은 대표적인 3D 업종이다. '3D'는 '더러운'의 Dirty, '어려운'의 Difficult, '위험한'의 Dangerous의 앞글자를 따 만든 단어다. 이제 우리 사회는 '3D'라는 단어에서 삼성전자나 LG전자의 '3D TV'를 떠올린다. 실제 지난 봄, 김포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법 교육을 했을 때,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3D 업종에 종사한다고 말했더니 학생들은 토끼 눈을 떴다.

"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바타'같은 영화를 만든다고요?"

녀석들은 '3D'라는 말에서 특수안경을 착용하고 보는 영화 <아바타>의 입체화면의 기술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생활에 필요한 가구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누군가는 무거운 합판을 나르고 독한 본드로 붙여 화학약품으로 도색하는 고된 '3D' 노동을 해야 한다.

온종일 분진 날리고 약품 냄새로 머리가 어질해지는 공장에서 일할 한국인 노동자는 드물다. 마석 가구공단의 공장주들에게 3D 노동을 마다치 않는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 딱지가 붙은 이방인이기보다는 소중한 일꾼이다.

'성생공단'이라는 명칭은 이곳의 선주민인 한센인들과 관련이 깊다. 한센병은 흔히 '문둥병'이라 알려진 질환으로 이들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다. 한센인 중 일부가 1960년대부터 이곳 마석 녹촌리에 자리 잡았고, 성공회 교회가 이들의 자립을 도와 함께 '성생원(聖生院)'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제 노년이 된 한센인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던 성생농장부지를 가구공단에 임대해 그 수익으로 살아간다.

선주민이자 한센인인 김종호씨 같은 이는 자기소유 대지의 공장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떼먹는다는 소문이 돌면 참지를 못하고 "꺼지라"고 욕을 해댄다. 이주노동자들이 체불임금으로 공단을 등지면 자신들의 수익기반인 임대업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공단 노동자들을 상대로 밥과 식료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마석 가구공단의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샬롬의 집' 관장인 이정호 신부의 말처럼 한센인과 공장주,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은 마석가구공단의 '삼위일체'다.

추방된 자들의 정서적 동질감 때문일까. 마석은 사회적으로 버림받았던 한센인들이 자립한 공간인 동시에 불법의 굴레를 짊어지고 단속의 공포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의 값어치가 빛나는 곳이다.

'기계'가 필요한데 '사람'이 왔다

기사 관련 사진
 2012년 7월 18일 과천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서 정부의 고용허가제를 비판하는 이주노동자들
ⓒ 이동철

관련사진보기


이들에게 불법의 굴레가 씌워진 것은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 탓이 크다. 이주노동자를 처음으로 국내에 받아들였던 '산업연수생 제도'나 '고용허가제' 모두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제약한다. 더욱이 가족을 데려올 수도 없다. 가족을 동반할 경우 저개발 국가 이주노동자의 한국 정주가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산업분야의 부족한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한국정부는 어찌 보면 3D 업종에서 군말 없이 일하는 '기계'를 원했던 것이다.

<마석>은 경제적 필요로 공생하는 이주노동자와 한국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경제적 가치 외에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한번도 주목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을 세세하게 담아낸다.

오후 3시 30분경, 찹쌀 순대와 떡볶이 차량이 공단을 돌아다니면 간식시간이다. 대부분 공장에서는 30분 동안 간식시간을 지키지만, 일이 너무 바쁘면 이 시간이 짧아지거나 생략된다. 간식시간이 끝나갈 즈음, 공장 밖은 나른한 오후이다.
- 본문 중

오토바이로 북적이는 출근길, 밥을 먹고 인스턴트 커피로 입가심하는 점심시간의 풍경, 별다른 통보가 없이 식당에서 저녁이 배달되면 야근임을 눈치채는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은 아주 소소하다.

네팔에도 기러기 아빠가 있다

<마석>은 이주노동자의 입을 빌려 그들의 이주노동의 기원을 설명한다. 아울러 차별과 추방을 견뎌내 고국에서 이루고자 하는 그들의 꿈이 무엇인지도 전한다.

나한테 한국은 돈 벌기 좋은 나라예요. 내가 조금 고생하더라도 먹고 살 수는 있어요. 이 나라에 계속 머물 생각은 없어요. 부모님과 가족, 친척들이 네팔에 있고, 내가 태어난 나라니까 돌아가야죠.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이렇게 오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 본문 중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은 본국에서의 좋은 집과 행복한 가정을 약속하는 기회의 땅이다. 네팔 출신 사티씨는 불법체류자로 20년 가까운 세월을 한국에서 일했다. 덕분에 한국인들이 동경하는 여행지인 포카라와 수도 카트만두에 집도 장만했다. 그러나 부인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2005년에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갓난아이 때 얼굴을 한번 본 아들과 이별한 지 10년이 지났다.

안나푸르나 출신의 순수한 청년 사티씨에게 물질적 풍요는 중요하다. 사티씨의 고국은 관광으로 먹고사는 최빈국이다. 가구와 같은 고가품의 수요가 전무하다. 본국의 경제상황으로 볼 때 가구기술로는 사티씨 가족이 지금 누리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유지할 수 없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귀국을 미루고 인간적 모욕과 차별을 견뎠지만, 오히려 아들 녀석이 자신을 서먹해할까 걱정인 현실은 역설적이다. 물질적 욕망 속에서 한국의 기러기 아빠와 같이 변해가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생생하다.  

신분이 불법이라고 미래의 꿈까지 불법은 아니다

김현미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의 해설처럼 마석이라는 공간은 상호의존적이며 서로에게 관대하다. 이주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노동하고 소비하며 지역의 생산에 참여하는 구성원"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해 4월에 직접 공단을 찾아 "외국인 근로자 단속문제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가구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와 공장주들을 격려한 바 있다. 유독 한국정부만이 이들을 '불법체류자'라 손가락질한다.

불법의 굴레는 대물림된다. 한국말이 유창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아인씨(23)는 부모의 미등록 신분으로 인해 겪은 차별을 생각하면 한국이 원망스럽다. 어느 날 학교에서 헌혈했는데, 혈액관리본부에서 부모가 미등록 신분이기에 아인씨의 혈액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아인씨는 생애 처음으로 한국땅에서 굴욕을 배웠다.

바리스타에, 평소에 요리에 관심이 많고 남양주 슬로푸드대회에 나가 '삼계 롤', '인삼 호박잎쌈'으로 상을 받기도 할 만큼 재주가 뛰어나지만, 비자가 없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다. 아인씨는 안정된 신분을 위해 한국남자와 계약결혼을 할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에 대한 미련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가려 한다.

<마석>은 한국사회가 '기계'를 바라고 데려온 이주노동자들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일깨운다. 지금껏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이들의 삶과 일상을 조용히 전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마석>은 기존의 방식처럼 이주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을 폭로하고 고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울림은 깊다.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미등록 신분일지언정, 이주노동자들의 일상과 노동, 그리고 사랑과 가족, 미래의 꿈이 불법일 수는 없다는 것이 <마석>이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이다.

같이 읽어보면 좋은 책 : <코끼리> 김재영, 실천문학사 2005
기사 관련 사진
 <코끼리> 책표지.
ⓒ 실천문학사

관련사진보기

이 나라가 워떻게 오늘날 여기꺼정 왔는 줄 아냐? 옛날에 내가 공장에서 일할 땐 손가락은 유도 아녔어. 팔뚝이 날아가고 모가지가 뎅겅뎅겅했으니까. 첨엔 촌뜨기라 멋모르고 일했지. 먹고살기 힘들 때였으니깐 인제 한국 놈들은 이런 데서 일 안혀.

막말로 씨발 험한 일이니까 니들 시키지 존 일 시킬려고 데려왔간? 아무리 그래도 안전장치는 해줘야 한다고? 늬들도 자르면 피 나오고 누르면 똥 나오는 사람이다, 이거냐? 웃기는 소리들 마. 한국 놈들한테도 안 해준 걸 늬들한테라고 해주겠냐? 아니꼬우면 돌아가. 
-<코끼리> 본문 중

소설가 김재영이 2005년에 쓴 단편 소설 <코끼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소설 속 '필용'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선은 한국사회가 1990년대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인 이후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소설 <코끼리>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로 평가받는다. 기록물인 <우린 잘 있어요 마석>과는 달리 가상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지만 <코끼리>는 <마석>과  닮은 점이 많다. 대표적인 3D 업종인 가구공단이 배경이 되고 이주노동자 2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드러낸다.

다만, 소설이라는 형식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겪는 차별이 좀 더 극적이고 상징적이다. 소설 속 주인공 네팔소년 아카스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놀림당하는 현실에 탈색제로 얼굴을 씻고 또 씻다가 피부질환에 걸린다.

또한 이주노동자 문제를 지적하는 소설 <코끼리>의 어조는 <마석>보다 격정적이다. 이 소설은 2003년 고용허가제 실시를 전후로 우리사회의 이주노동자 문제가 정점인 시기에 쓰였다. 노동착취와 사회적 차별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의 억눌린 분노가 정부의 대대적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맞물리며 크게 폭발했다. 작가는 취재과정에서 "이주노동자의 억눌린 억압이 언제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란 예감을 받았다"고 위기의식을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우린 잘 있어요, 마석 - 마석가구공단 이주노동자 마을의 세밀한 관찰기| 샬롬의집 | 고영란 | 이영 (지은이) | 성유숙 (사진) | 클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