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을 거슬러 올라가 2011년 아직 본인이 대학생이던 시절, 매주 일요일마다 이주노동자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레인보우 스쿨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때의 이야기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서울 목동에 있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살인적인 강제단속추방을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이 열려서 참석한 적이 있다. 기자회견 말미에 당시 이주노조 위원장이었던 미쉘 카투이라 동지의 발언순서가 있었다. 영어로 발언을 하시는 바람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몇 개 없었지만 아직까지도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단어가 바로 "Dignity" (존엄성)였다. 우리의 투쟁이 단순히 월급을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내용으로 한국정부에게 강한 일갈을 내뱉었던 미쉘 동지를 보면서 저런 사람과 함께라면 분명히 무엇인가 감화 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이주노동조합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곧잘 했었다. 당시에는 정말 미쉘 동지와 함께 이주노조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있었고 금방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이주노조 초대 아노아르 위원장부터 5대, 6대 위원장을 역임한 미쉘 위원장까지 정부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역대 위원장 중에서 최초로 합법비자를 가진 미쉘 위원장마저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허위취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고, 1심에서는 우리가 승소했지만 2심에서 결국 패소하였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날짜인 2012년 4월 30일, 병든 할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잠시 필리핀에 귀국하였다가 노동절 참석을 위해 재입국한 미쉘 동지는 인천공항에 억류되었다. 출입국관리법 11조(입국의 금지)1) 3항에 의거하여 미쉘 동지가 대한민국의 이익을 저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재판이 진행 중인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땅을 밞지 못했다. 미쉘 동지가 인천공항에 억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발만 동동 굴렀는데 그게 정말 한국에서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그때는 잘 몰랐다. 그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다시 흘러서 그 사이에 이주노동조합은 새로운 위원장이 선출되었고 작년에는 이주노조 합법화라는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때마다 SNS를 통해서 미쉘 동지에게 서투른 영어로 소식을 전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는 이주노동희망센터에서 필리핀 다바오지역으로 지역현장조사를 하러 가는데 함께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서 미쉘 동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덜컥 승낙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필리핀 출장날이 다가왔다. 4시간여 동안 인천공항에서 마닐라공항으로 날아가는 동안 미쉘 동지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꺼낼까, 영어로 대화를 잘 못하면 어떻게 하지, 준비한 선물은 마음에 드실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닐라에 위치한 호텔 로비에서 만난 미쉘 위원장님은 5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정말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머뭇거린 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잘 지냈냐고 안아주는 미쉘 동지가 무척이나 따뜻했다. 다음날 미쉘 동지가 필리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그란테 인터내셔널(MIGRANTE INTERNATIONAL)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첫 인상은 마치 필리핀의 가정집 같았는데 둘러보니 꽤 넓은 크기에 사무실, 식당, 쉼터, 회의실 등을 두루 갖춘 실용적인 구조였다. 미그란테의 임원 및 자원활동가과의 소개를 마친 이후 이주노동희망센터와 이주노조에 대해 소개하는 순서가 있었다. 이주노조를 소개하면서 작년에 제작된 “이주노조설립 10년의 외침”이라는 제목의 10주년 영상을 상영했다. (https://youtu.be/5vV2yoEoY8E)
그 이후 미쉘 동지와 함께 필리핀 남부에 위치한 다바오 시로 이동하여 이주노동을 이미 다녀온 사람들, 이주노동자의 가족들, 이주노동을 준비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이주노동자 그룹을 인터뷰하였고 설문조사를 통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파악하는 활동에 참여하였다. 하루 종일 다양한 종교와 연령대와 지역에 거주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서 그/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특히 미쉘 동지를 포함하여 미그란테의 헌신적인 여성 활동가들인 Grace, Mayette 등을 만나고, 장기파업 중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 설문조사를 위해 발 벗고 뛰어다닌 여성노동자들과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건 정말 감동적이라고 밖에 설명하기가 어렵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미그란테동지들에게 언젠가 다시 또 필리핀에 오겠다는 굳은 약속과 함께 이주노조 조끼를 선물로 주었다. 오늘의 추천할 노래는 존 덴버가 1971년에 미국에서 발표하여 빌보드 2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던 히트곡 “take me home country road“이다.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니 미쉘 동지와 그레이스동지가 필리핀 현지에 있는 작은 코인노래방을 찾아서 함께 열창한 노래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들이 고된 노동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언젠가 돌아갈 고향을 떠올리면서 불렀을 것만 같은 노랫말을 음미하면서 함께 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Country roads take me home
1)제11조(입국의 금지 등) ① 법무부장관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외국인에 대하여는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 <개정 201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