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플러스] 특종 미룬 기자들인신매매 피해자 2천 명 구했다 

입력 : 2016.07.19 08:27 0 5 PlayPauseSTOPMuteUnMute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통신사 AP는 자신들만의 차별화된 뉴스를 만들 수 있는 최대 승부수가 탐사 보도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는 탐사 보도 강화 방침을 내놓은 지 2년 만인 올해 언론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인 퓰리처상의 공공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는데요, 특종보다 사람이 중시되는 인간적인 탐사 보도를 가치로 내걸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정혜진 기자의 취재파일 보시죠. AP통신의 탐사보도팀은 연속보도로 동남아시아산 해산물이 어떤 노동과 착취를 거쳐 미국의 식탁에 오르게 되는지 그 과정을 폭로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인도네시아의 벤지나 섬에서 출발했습니다. 동남아보다는 오히려 호주나 파푸아뉴기니에 더 가까운 섬으로 인터넷은 상상도 할 수 없거니와 우기가 되면 몇 달 동안이나 근처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아주 외딴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엔 괜찮은 일자리가 있다는 꼬임에 넘어온 이주 노동자들이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게 철창 안에 갇혀 지내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미얀마인들이 대부분으로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이름으로 위조된 서류를 부여받은 채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일하고 있었던 겁니다.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거나 쉬려고 하면 고용주들로부터 채찍질을 당하거나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 불구가 되거나 비참하게 죽어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고문이 견디기 어려워 물속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붙잡힐 것이 무서워 도망치는 건 엄두도 못 냈습니다. 이들이 잡은 오징어와 새우 등 각종 해산물은 태국의 한 항구로 옮겨졌는데요,

 

보도팀은 인공위성을 이용해 이 노예 어부들을 태운 어선의 신호를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또 배가 도착하자 물건을 옮겨 실은 트럭들 역시 추적했는데요, 트럭은 여러 중소기업으로 물건을 실어나르고 있었고, 세관신고서까지 추적한 결과 미국으로까지 수입되고 있었습니다. 노예 노동의 비극이 감춰진 해산물이 거대 유통 기업인 월마트와 친환경 유기농 브랜드인 홀푸즈, 게다가 애완동물 사료 업체 웰니스에도 공급되고 있었던 겁니다. 겨우 죽 한 그릇 먹으며 정작 노동자 본인들은 입에 대보지도 못한 해산물들이 애완동물용 통조림으로 판매되고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죠.

 

이렇게 1년이 넘는 취재를 마치자 팀은 특종 보도만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요, 이때 팀원들은 기사 송고를 미루기로 결정했습니다. 취재원들을 안전하게 구출해내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기사를 내보내지 않고 기다렸고 인신매매 피해자 2천 명을 모두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탈출한 노동자들은 처음엔 정부 공무원들마저 피할 정도로 두려움에 차 있었지만, 마침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았고 살아 돌아오리라 꿈도 꾸지 못했던 고향에 돌아와 가족들과도 다시 만났습니다. AP 취재진은 이렇게 노예 생활을 하던 남성이 20년 넘게 헤어졌던 어머니와 상봉하는 장면까지 카메라에 담았는데요, 전미탐사보도협회에서 매년 개최하는 회의에서 이 탐사보도팀을 이끌었던 기자가 노동자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고 말하자 발표장을 가득 채운 참석자들로부터 이례적인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촉각을 다투는 속보 경쟁 속에서 언론의 본질적인 기능이 뭔지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686400&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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