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헌법 위 ‘출입국관리법’···마약사범 낙인찍힌 스리랑카 노동자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2016-03-13 15:15:49

2014년 외국인 동료들과 함께 수원음식문화축제를 찾은 날라끄 | 수원이주민센터 제공

이름은 러구 가마개 날라카 이메샨(33). 사람들은 줄여 ‘날라끄’라고 부른다. 지난달 25일 오후 날라끄는 법무부 호송차량에 실려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갇혔다. 사고 한 번 없이 지낸 그였다. 한국에서 자신이 찍어낸 내장재를 쓴 자동차를 보며 뿌듯해했지 그 차 안에 실려 쫓겨날 줄 몰랐다. E-9 비자(제조·건설·농업 분야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비자를) 연장하러 간 수원출입국관리소에서 ‘보호’조치인이란 사람이 다짜고짜 수갑부터 채우려했다. 날라끄와 동행한 한국인 상사 조씨가 “죄없는 사람한테 왜 수갑을 채우냐”고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영문도 모르고 수갑을 찬 채 끌려갈 뻔했다.


날라끄가 일하던 경기 화성 북양산업단지 내 ㄱ공장은 ‘초상집’이 됐다. 스리랑카 동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철창 신세가 되자 공장 기숙사 한국어 수업도 사라졌다. 경기 수원 이주민센터도 침울하긴 마찬가지. 날라끄는 2010년부터 매주 일요일 이곳에 와 한국어와 한글을 배웠다. 화성 공장에서 버스로만 1시간 30분. 2004년 시작한 수원이주민센터 한국어교실에서 날라끄는 첫 개근자다. 지난달 28일 처음으로 수업을 빠졌다.


공장 뒷편 기숙사 운동장은 텅 비었다. 10명의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크리켓을 하던 곳이다. 파리뿌(렌틸콩으로 만든 스리랑카 전통음식)를 나눠먹으며 한국 TV를 보거나 고향 얘기를 나누던 주말이 사라진 지도 2주째. 날라끄 동료들은 주말 북양산업단지에서 남양읍까지, 남양에서 다시 마도면화성외국인보호소까지 버스를 2번 갈아타고 날라끄를 만나러 간다. 스리랑카인 막내 ㄴ씨는 7살 위 날라끄를 한국말로 “형님”이라고 부른다. 면회소 수화기로 ㄴ씨는 울먹였다. “형님, 언제쯤 나올수 있는 거에요. 이러다가 우리 인사도 못 나누고 형님 스리랑카로 떠나는 거 아네요.” 날이 풀린 지난 28일에는 스리랑카 동생 ㄷ씨가 내복을 넣어줬다. 껴입을 옷도 없이 잡혀갔다. 보호소에서 얼마나 추위를 탈까. 따뜻한 나라 친구라 안다.


지난 8일 ㄱ공장에서 날라끄의 스리랑카 동료가 플라스틱을 성형하는 사출기를 조작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죄로 잡아갑니까.” 조씨가 거듭 따졌다. 보호조치인은 “마약이요. 정확히는 대마. 기소유예 전력이 있어 한국에 둘 수 없어요”라고 답했다. “불법 체류자도 아니고 합법 비자 연장하려고 온 사람을 영장도 없이 잡아가요? 비자도 아직 한달이나 남았잖아요. 인권침해 아니요?” 묻는 말에 “이 사람들한테는 다른 법보다 출입국관리법이 우선 적용되는 겁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종의 ‘영장’ 역할을 하는 보호명령서는 구금된 후에 나온다. 취재 중 만난 한 이주민 인권 운동가는 “출입국관리법은 헌법보다 위에 있다”고 말했다.


조씨가 말한다. “뭔가 착오가 있을 거야.” 그는 7년 전 기소유예 사건 때를 떠올렸다. 조씨는 그때도 날라끄 옆을 지켰다. 2009년 북양산업단지 내 스리랑카 노동자 한 명이 닭죽에 대마 성분을 넣어 동료들과 나눠먹다가 잡혔다. 경찰은 일대 모든 스리랑카 노동자를 호출했다. 조씨가 동행했다. 날라끄는 당시만 해도 한국어를 몰랐다. 날라끄는 닭죽을 먹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변과 모발에서도 대마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조씨는 “경찰이 사인만 하면 문제 없이 돌려보내겠다고 해서 다들 경위서에 사인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스리랑카 통역도 대동했다. 하지만 조씨는 경찰이 데려온 통역자를 두고 “내가 하는 한국말도 제대로 못알아 듣는 사람이었고, 나도 모르는 법률용어를 경찰이 남발하는데 그걸 제대로 통역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


날라끄가 ㄱ공장에서 작업하는 모습. | 스리랑카 동료 ㄴ씨 제공

경찰 조사 후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피의사실은 인정된다. 하지만 피의자들은 모두 동종전과가 없고, 피의자들 소변과 모발에서 대마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상습섭취자가 아닌 점. 반성하는 점 등을 참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날라끄와 동료들은 기소유예가 됐다는 사실을 몰랐다. 9일 화성외국인보호소 면회소에서 만난 날라끄는 기자에게 “풀려났으니 모두 해결된 걸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찰의 기소처분은 ‘범죄자’라는 뜻이 아니다. 검찰이 기소하면 재판에서 유·무죄를 가린다. 날라끄는 기소유예로 재판도 받지 못했다. 헌법재판소에서 ‘기소유예취소 헌법소원’을 하는 방법이 있지만 날라끄에게 이런 방법을 알려주는 이들도 없었다. 수원이주민센터의 이지연 활동가가 말했다. “무혐의 처분을 내려야 할 일을 검찰이 마치 선처하듯 기소유예를 한 겁니다. 출입국관리소는 기소유예 만으로 범죄자 취급을 한 거고요.” 출입국관리소 측에 물었다. 경향신문에 보낸 회신에서 이 기관은 날라끄를 ‘범죄자’로 칭했다. 출입국관리소는 “마약사범 및 강간 등 성범죄자는 반사회성이 강한 범죄자로 엄격한 출입국관리 적용 대상자”라며 “중요 범죄자는 출입국관리법에 의거해 강제퇴거 대상자가 된다”고 말했다.


출입국관리소 질의 회신 문서

날라끄는 2012년 비자 만기로 스리랑카로 돌아간 뒤 2013년 다시 입국했다. 재입국 때 기소유예 기록은 문제되지 않았다. 출입국관리소는 “비자발급 당시에는 검찰로부터 범죄사실이 통보되지 않아 인지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은 입사 전 마약 상습 복용 여부 등 각종 검사를 받는다. 날라끄도 화성 ㄹ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예전 일한 ㄱ공장에서 사장이 다시 불렀다. 스리랑카인들은 환영받는다. 북양공단 가는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조용하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게 몸에 배인 사람들 같다. 공단 사장들이 스리랑카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ㄱ공장은 외국인 노동자 15명 중 10명이 스리랑카인이다. 공장장은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본격 빠져나가는 다음달부터 공장을 어떻게 돌려야 할지 고심한다. 한국인들이 꺼리는 사출(플라스틱 성형)일을 할 인력이 없다. 한국어를 제법 하는 스리랑카 숙련 노동자들은 내년부터 비자만료로 스리랑카에 잠시 돌아갔다가 10~12월에서야 재입국할 계획이다. 조씨는 “날라끄 같이 한국어도 되고 숙련업무도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은 찾기도 힘들다. 스리랑카 동료들이 잠시 비운 자리를 고참인 날라끄가 담당해주길 바랐는데 회사 스케줄이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스리랑카 노동자 날라끄가 수원 경기도청 앞 팔달산 벚꽃 길을 걷고 있다. 수원이주민센터 제공

구금된 날라끄는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했다. 한 주만 버티면 이의신청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 수원이주민센터 관계자들이 “법무부에 알아보니 (한 주 만에) 힘들 것 같다고 한다”고 말했다. 면회소에서 수화기를 붙들고 웃고 있던 날라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럴 줄 알았어요.” 애써 쓴웃음을 짓는다. 구금된 상태로 이의신청이 받아지기까지 기다리든지, 포기하고 스리랑카로 돌아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버티다가 귀국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면회소 창살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한다. “기대는 안했어요. 괜찮아요. (스리랑카로) 돌아가야지요.”


이들 이주노동자들에게 법·인권 따위는 먼 나라 이야기일 때가 많다. 종종 추방하고, 배제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지연씨는 “외국인 노동자의 강제퇴거는 어떤 처분보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출입국관리공무원들은 강제퇴거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일단 단속해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해버리는 식이다. 법적 통제가 거의 없다보니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기 어렵고 사후 구제도 쉽지 않다”고 했다.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날라끄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아요. 법은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하는데 법이 사람을 힘들게 하면 어떻게 해요. 9년간 돈벌 수 있도록 허락해준 건 고맙다가도 갑자기 잘못도 없는 나한테 왜 이러나 하는 생각에 밉기도 해요”


면회소에서 날라끄는 “반드시 행정소송을 하겠다”며 마음을 다잡으며 친구들에게 말했다가, 다음날 전화 통화에서는 “비자 연장도 안해도 된다. 마약을 한 범죄자로 돼있는 것 그 억울한 것만 풀고 떠나고 싶다”며 흔들리기도 했다.


화성외국인보호소는 날라끄가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는 이유로 면회를 중단시켰다가 다시 허용했다. 기자와의 면회가 이뤄진 다음날에도 수원출입국관리소는 법률용어로 가득한 서류 한장을 날라끄에게 내밀고 서명을 요구했다. 날라끄는 자신이 서명한 종이가 어떤 내용들로 채워졌는지 모른다.


수원이주민센터 활동가들이 지난 9일 수원출입국사무소 앞에서 “구금중인 이주노동자 날라끄를 석방하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입국사무소 유리벽에 ‘열린사회 구현’이라고 쓰여있다.

수원이주민센터는 “출입국 관리명목으로 행해지는 일들은 행정절차법, 인신보호법 등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법률이 제정될 때마다 그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특수한 지위를 누려왔다”며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억울한 제2, 제3의 날라끄가 나오지 않도록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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