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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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5 00:05:01크게보기작게보기프린트이메일 보내기목록
 
 
 

“선생님, 피검사 많이 아파요? 무서워요.” 덩치 큰 네팔 이주노동자가 혈액 검사를 위해 팔을 걷으며 어눌한 우리말로 엄살을 떨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15일 건강검진이 있었던 경산 이주노동자센터의 풍경이다. 경산시보건소는 지난 2009년부터 매 분기마다 이주노동자들을 찾아가 무료 건강검진을 해왔다.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병원을 찾기 힘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검진을 받을 수 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한 명이 떠올랐다. 스물여섯 살 캄보디아 청년이 공장에서 일하다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건 2년 전 봄이었다. 몸이 심하게 부은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고, 검사 결과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양쪽 콩팥의 기능을 거의 상실해 신장 이식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친형이 동생을 위해 한쪽 신장을 기증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술비가 문제였다. 농장에서 저임금 중노동을 견디다 못해 자동차 부품 공장으로 일터를 옮기면서 ‘불법 체류자’가 됐고, 건강보험 혜택도 사라진 탓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일터 선택권을 막고 있는 고용허가제가 그들의 건강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에 실린 안타까운 사연을 읽은 많은 시민들이 수술비에 보태라며 성금을 보냈다. 병마를 이겨낸 그는 공장으로 돌아가 다시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 이 캄보디아 청년도 평소 건강검진을 받았다면 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난 2012년 성서공단 노조가 이주노동자 237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최근 2년간 건강검진을 받은 이주노동자는 43%에 불과했다. 최근 1년간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 이주노동자도 33%에 달했다. 병원에 갈 시간이 없고, 비싼 병원비가 부담스럽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힘든 노동을 하면서 근골격계 질환 등 ‘몸의 병’을 앓는다. 낯선 이국 땅에서 단속될까 불안에 떨며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도 얻는다. 그러나  ‘불법’이라는 낙인 탓에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 계층에 대한 의료비 지원 사업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그들이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지역 거점 공공의료기관을 정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병들었을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인    ‘건강권’은 내국인과 이주민, 합법과 불법을 떠나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인류의 보편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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