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취업 '밭일' 외국인노동자 온종일 초조·불안의 연속

본보 기자 농번기 동행 취재기
새벽 시골서 일행 열댓명 태워
5분만에 일터行 '007작전' 방불
식사때도 경계 … 숨어서 먹기도
시골집 돌아온 뒤 안도의 한숨

2017년 07월 10일 00:05 월요일
지난달 28일 아직 밤이 가시지 않은 새벽 5시30분쯤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경기지역 한 농촌 주택가 길에서 서성거렸다.  

이 남성(A씨)은 외국인 불법취업을 알선하는 '브로커'다. 

전날 A씨는 농번기를 맞아 일손이 필요하다는 고구마 농장주의 의뢰를 받았다.

이날 A씨는 25인승 버스를 몰고, 약 30분 간 구불구불 시골길을 달려 폐가처럼 보이는 허름한 집 앞에 도착했다. 대문 너머로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외국인노동자 열댓 명이 갑자기 대문을 열고 나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버스에 올랐다. 

A씨가 이들을 태우고 자리를 뜨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치 '비밀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 

A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원들이 외국인노동자들의 거주지를 알면 들이닥치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버스에 탄 외국인노동자들은 이날 동행 취재에 나선 기자를 보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들에게 기자를 비롯한 외부인은 '경계·기피대상'이다. 외국인노동자들 중 상당수는 눈동자만 쉴 새 없이 굴렸고, 다른 이는 아예 창밖을 보며 딴청을 피웠다.

외국인노동자 B(베트남·여)씨에게 왜 불안하냐고 묻자 "요즘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이 부쩍 심해져 언제 적발될지 몰라요, 불안해요"라고 말했다.

브로커-외국인노동자-기자 간의 '불편한 동행'이 계속되던 오전 7시쯤, 경기지역 한 고구마밭에 버스가 멈춰 섰다. 

외국인노동자들은 농사일을 한두 번 접해본 것이 아닌 것 마냥 곧장 작업복과 장비를 챙기더니 밭일을 시작했다. 

일하는 내내가 '불안의 연속'이었다. 외국인노동자들은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지나가는 차 소리에 흠칫 놀라 벌떡 일어났다. 뙤약볕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틈도 없었다.

한국으로 시집간 딸이 보고 싶어서 한국을 찾았다는 B(베트남·남)씨는 "(법률상)한국에 있는 동안 근로 행위는 불법이에요. 하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어요"라며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에 2번 이상 적발되면 강제 추방당해요"라고 불안한 심정을 털어놨다.

이들의 '긴장'은 밥 먹는 시간에도 풀리지 않았다.

오후 1시 점심시간, 외국인노동자들은 도로변을 주시하고, 산속에 숨는 등 각각 경계태세를 취한 채 식사를 했다.  

단속반원들이 점심시간 이용해 외국인노동자들이 함께 있는 식사도중 단속하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입국관리당국에 적발된 적이 있다는 C(베트남·여)씨는 "검은제복 입은 무리가 나를 덮쳐 무서웠다" 며 "수갑을 채우고 팔도 꺾고 강압적으로 대했어요.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요"라고 몸서리쳤다. 

고구마 농장주 D씨의 불안감도 이들 못지 않았다.

D씨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취직시키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일손이 많이 필요한 농번기에 사람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며 "한국인은 농가에서 일하는 것을 꺼려 농사를 위해서 외국인 근로자가 무조건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오후 6시, 퇴근 시간이 되자 버스는 외국인노동자들을 태워 숙소로 돌아가는 길로 향했다. 

이때 버스 뒤로 은색스타렉스 차량이 등장하자 운전대를 잡은 A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운전에 집중하지 않고 사이드미러를 주시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차량이 은색스타렉스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날 저녁 새벽에 만났던 장소에 버스가 멈춰서자 외국인노동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향했다. 

/김현우·김중래·이경훈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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