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릴 수 없는 1%의 사랑

<웰컴, 삼바> 감독:올리비에르 나카체·에리크 토레다노 출연:오마 사이·샤를로트 갱스부르·타하르 라힘
  조회수 : 16,858  |  김세윤 (방송작가)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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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승인 2015.02.17  10:04:49
결혼 피로연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신랑 신부가 웨딩 케이크를 자르자 조심조심 케이크를 옮기기 시작하는 직원들. 그들을 따라 카메라가 주방으로 들어간다. 저마다 열심히 굽고 지지고 볶아대는 풍경을 지나 주방 끄트머리, 제일 후미진 자리에 이르러 카메라가 멈춰 선다. 산더미처럼 쌓인 접시를 닦는 사람들. 온통 흰옷을 입고 음식 재료 다루는 주방에서 외따로 푸른색 옷을 입고 서서 음식 쓰레기만 치우는 사람들. 예외 없이 모두 흑인. 그들 가운데 주인공 삼바(오마 사이)가 있다.

‘브라질에서 발생한 4분의 2박자 리듬의 빠르고 정열적인 춤’에서 따온 이름 ‘삼바’와 달리 그의 삶은 하나도 흥겹지 않다. 고향 세네갈을 떠나 프랑스로 건너온 지 10년. 하루도 마음 편히 살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곧 마음이 편해질 터이다. 조만간 거주 허가증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요리 파트로 승진한 게 사흘 전. 그때 상사가 내민 정식 고용 계약서를 이민국에 가져갔다. 프랑스의 쓰레기를 치우는 데 기여한 세월이 무려 10년이나 되는 점을 갸륵히 여겨 이제는 프랑스 시민으로 인정해줄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정부가 하는 약속에는 언제나 틀림이 있게 마련인 것을.

‘관례’만 믿었다가 ‘법률’에 배신당한 삼바. 손에 쥔 건 ‘거주 허가증’이 아니라 ‘추방 명령서’. 좋게 말할 때 제 발로 나가라며 일단 풀어주었지만 삼바는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이 없다. 경찰 단속을 피해 악착같이 살아남을 작정이다. 더 구석으로, 더 바닥으로 숨어들 생각이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밑바닥 삶이 너무 고달파서 힘들고 외로울 땐 앨리스(샤를로트 갱스부르)를 찾아간다. 이주노동자를 돕는 시민단체의 자원봉사자. 그러다 시나브로 삼바의 친구가 되어가는 여자 앨리스.

  
 

작가 델핀 쿨랭이 한동안 난민 관련 단체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쓴 소설 <웰컴, 삼바>(열린책들)는 이주민의 고단한 현실을 전하는 데 좀 더 집중하는 이야기(라고 들었)다. 영화로 각색하면서 앨리스의 역할을 부쩍 키우고 삼바와 ‘썸’을 타게 만들었다. 올리비에르 나카체와 에리크 토레다노, <언터처블:1%의 우정>을 함께 연출한 두 감독이 이번에는 ‘언터처블:1%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삼바의 행복이 ‘모든 삼바’의 행복이 되려면

<웰컴, 삼바>는 살짝 꾸며넣은 로맨스 때문에 조금 덜 뭉클할 것만 같았다.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러다 마주친 한 장면. 앨리스를 만나러 가는 조카에게 “다 시간 낭비다”라며 핀잔주는 삼촌을 향해 삼바가 소리치는 장면. “그냥 믿고 지켜봐주면 안 돼요? 나도 가끔은 행복해도 되잖아요. 그 여자랑 있으면 행복해져요. 늘 여기 숨어서 불안하게 살다가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낀다고요.”

어느새 나도 ‘그냥 믿고 지켜봐’주길 망설이는 관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팍팍한 현실을 상업 영화 소재로만 이용해 먹는 영화 아닐까, 지레 경계했던 것이다. 삼바의 외침은 곧 영화의 외침이기도 했으니. 영화에서만이라도 가끔은 행복해도 되지 않을까. 그들이 이루고 싶은 꿈을 영화가 먼저 이루어 세상에 보여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들의 ‘꿈’이 뭔지 관객들이 알고 나면, 그들의 ‘삶’을 더는 모른 체할 수 없지 않을까.

결국 영화는 잿빛 삶에서 금빛 꿈을 빚는 연금술. 꽃이 피지 않는 곳에서 잠시 꽃을 피워내는 마술. ‘저 멋진 꽃이 왜 우리 곁에선 피지 못할까’ 질문하게 만든다. ‘삼바에게 허락된 작은 행복이 현실의 모든 삼바에게도 허락되려면 어찌해야 좋을까’ 궁리하게 만든다. 영화 <웰컴, 삼바>가 그렇게 만든다. 세상 끄트머리, 제일 후미진 자리로 밀려난 이방인을 볼 때마다 잠시 멈춰 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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