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이들은 왜 끝내 ‘일본 국민’이 될 수 없었나

이범준/북콤마

입력 2015-07-17 02:56

 

[책과 길-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이들은 왜 끝내 ‘일본 국민’이 될 수 없었나 기사의 사진
자이니치가 많이 사는 일본 오사카 지역의 명패들. 왼쪽은 김씨가 본명을 적은 명패 옆에 괄호를 치고 통명(이미 알려져서 통하는 일본 이름)인 ‘가네시로’를 적은 것이고, 오른쪽은 박씨가 일본식으로 성을 바꾸는 창씨를 하면서 본관인 ‘수원’을 살린 경우다 북콤마 제공
“일본제국의 식민 지배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1945년 무렵 200만명에 이릅니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많은 사람이 귀국하지만 60만명이 돌아오지 못하고 남겨집니다. 이렇게 일본의 식민지를 계기로 일본에 살게 된 조선인과 후손이 자이니치(在日)이며 100만명에 달합니다. 일본 전체 인구의 1퍼센트입니다.”

우리가 흔히 재일교포, 재일조선인이라고 부르는 ‘자이니치(在日)’의 일본 거주가 올해로 70년이 된다. 현직 신문기자이자 논픽션작가로 활동하는 이범준(42)씨가 3년여의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작성한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는 자이니치 70년사를 조명하면서 한일 양국 독자들에게 자이니치 문제를 재고하도록 요청한다.

세계는 이주민들이 섞여 사는 다문화국가 시대로 변화했지만 자이니치는 여전히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한국국적과 일본국적 중 어디를 선택해야 하는지 고뇌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최근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에서 보듯이 70년에 걸친 배제와 차별의 역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런 점에서 자이니치를 독특한 역사와 정체성을 가진 하나의 종족으로 바라보는 인류학적 관점이 유용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100년 가까이 살면서 조상의 국적을 유지하는 것은 자이니치뿐이라고 한다. 또 이주민 가운데 단시간에 모국의 언어를 완벽히 잃어버린 경우도 자이니치가 유일하다고 한다. 재중동포나 재미동포와 비교할 때 자이니치의 이런 특수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재중동포는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재미동포도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말이 유창하고, 우리 식 성(姓)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적은 중국이나 미국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자이니치는 정반대입니다. 우리말을 못 하고 일본이름을 쓰는데, 국적만 한국입니다.”

자이니치는 일본어밖에 못하고 한국에 가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이름을 쓰고 일본학교를 다녔다.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일본인이다. 그런데 그들은 일본인이 되기를 거부해 왔다. 한국인, 조선인이라고 말하고, 국적을 유지하려고 한다. 심지어 조선적(籍)이라는 이제는 사라진 나라의 국적을, 결과적으로는 무국적일 수밖에 없는 상태를 고수한다.

“21세기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조선·한국인 중 현지 국적을 취득하는 데 거부감을 가진 집단은 자이니치뿐이다.”

책은 자이니치의 고통스런 역사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다른 나라의 한국 이주민과는 다른, 전 세계 이주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독특한,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정체성과 태도를 갖게 된 이유를 이해시킨다.

한국 국적을 가진 자이니치 변호사 배훈은 국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이렇게 말한다.

“일본 국적이 되는 것 물론 싫다. 괴롭힘과 차별을 겪으며 얻은 정신적 상처가 깊다. 이제부터 일본 국적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에서 거부감이 훅 올라온다. 하지만 우리 자손이 영원히 외국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자이니치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했기 때문에 일본에 살게 된 조선인과 자손들이다. 일본은 자이니치 형성의 원인이면서도 식민지배가 끝난 후 자이니치의 일본 국적을 박탈함으로써 외국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연금과 의료보험, 참정권 등에서 제외시켰고, 취업에서도 차별했다.

한국도 이들을 외면했다. 정부 수립과 함께 반공주의가 득세함에 따라 자이니치는 귀국을 주저하게 됐다. 1959년 한국으로의 집단 이주가 논의될 때 이승만 정부는 한 사람당 500달러를 달라고 일본에 요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를 무산시켰다.

반면 북한은 자이니치 이주를 받아들였다. 일본에 살던 조선인 10만명이 1959년부터 25년에 걸쳐 북한으로 이주했으며, 이 사건은 자이니치 사회의 성격을 어쩔 수 없이 친북적으로 바꿔놓는다. 자이니치 중 15%가 북한에 살게 됐다는 것은, 자이니치라면 친척 중 누군가가 북한으로 이주했다는 것이고, 자이니치 모두가 북한과 관계가 생겼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8년부터 조선적 자이니치의 입국을 막고 있다. 대법원은 조선적 자이니치는 북한 주민과 다르지 않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과연 조선적은 북한 추종의 증거가 될까? 조선적 변호사 백충은 이렇게 말한다.

“조선적을 견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통일이 됐을 때 누가 착하다고 해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굴한다는 심정이었다… 결국 부조리에는 응하지 않았다.”

자이니치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고 할만한 이 책은 광복 70년을 맞은 한일 양국에 식민지배 역사는 정리됐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 이 다문화시대에 ‘국민’이라는 20세기적 개념을 붙든 채 자이니치의 비극을 외면하는 두 나라의 비인간성과 시대착오를 고발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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