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없는 아이들, 두번째 이야기·상] 떠나지 못하는 2세들

“발버둥쳐도 바뀌는 것 없지만… 새로운 시작 더 두려워”

최재훈·황성규 기자

발행일 2015-11-03 제3면

국적없는아이들
대잇는 고통 파키스탄 출신 불법체류자 카탈루(가명 30·여)씨가 딸 다니아(가명 6)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이 동네는 폐공장 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최재훈기자cjh@kyeongin.com

“고국도 부모님의 나라일뿐”
한국서 가정까지 꾸려 정착
“아이들은 나아지길” 기도만


경기도 내 한 외국인복지센터에서 다니아(가명·6)양을 만났다. 파키스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생김새는 사뭇 달랐지만, 태어나서 자란 곳이 한국이다 보니 뽀로로를 좋아하는 여느 6세 소녀들과 다를 바 없었다. 가족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다니아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황량한 곳을 지나 마치 폐공장 터를 방불케 하는 장소에 이르렀다. 거기서도 좁은 골목과 계단을 몇 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한 끝에 몇 채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앞에 도착했다. 이곳 중 한 곳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이웃집 모두 다니아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는 엄마(30)와 9개월 된 동생이 있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엄마가 일손을 놓게 된 탓에 다니아가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어졌다.

유치원에 갈 수 없어 대신 외국인복지센터에 다니고 있는 다니아는 그녀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험난한 삶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듯 시종일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반면 이를 바라보는 다니아의 어머니 카탈루(가명)씨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10대의 나이에 부모를 따라 한국에 건너와 ‘국적 없는 아이들’ 신분으로 숨죽이며 살아 온 그녀였기에,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 알기 때문. 그녀는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며 겪었던 온갖 핍박과 고통을, 내 아이들이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며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좀 더 나아지길 바란다”고 하소연했다.

학생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락아트


지난 2002년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하와(가명·23)씨는 커피숍에서 3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무역을 전공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그녀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봤지만 결국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하와는 고등학교 때까지 성실하게 학업에 몰두한 소위 모범생 스타일의 학생이었다. 하지만 캠퍼스 생활을 하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취업에 대비하는 또래의 대학생들과 달리,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르바이트가 전부다.

하와는 “정식으로 취업을 해서 일을 할 수가 없다 보니, 아르바이트 같은 시급제 일 밖에 할 수가 없다”며 “더 비참한 건 아무리 열심히 살아보려 발버둥쳐봐도 나아지는 게 없고 바뀌는 게 없다는 것이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한국이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그녀는 “꿈을 펼치기는 커녕,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며 쥐꼬리 만한 급여조차 못 받는 게 현실이라”며 “그럴 때마다 부모님의 나라인 방글라데시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님의 나라일 뿐 한국 문화에 익숙한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한다는 건 그 자체로 두려운 일이다”이라고 털어놨다.

성인이 된 국적 없는 아이들 1세대는 ‘떠나느냐 남느냐’의 문제로 갈등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뿌리를 내린 대한민국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간절함과 달리 현실은 이들에게 ‘불법체류자’라는 낙인만 더욱 짙게 새기고 있다.

/최재훈·황성규기자 cjh@kyeongin.com



[국적없는 아이들, 두번째 이야기·중] 무기력에 빠진 10대들

쫓기는 삶에 지친 사춘기… 설익은 꿈, 교실밖 내몰리다

최재훈·이종우·황성규 기자

발행일 2015-11-04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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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선 이미 문제아 낙인
“하고싶은 일 없고 다 싫어”
여학생은 유흥업소 발 담가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카말(가명·19)은 외국인 근로자로 한국에 들어온 방글라데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태어난 카말은 방글라데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저 부모의 나라라는 인식이 전부다.

아버지는 5년 전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고국으로 강제 출국당했고 현재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33㎡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다. 이마저도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조립식 주택인 탓에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카말은 가족이 모두 잠든 늦은 밤에야 집에 들어오곤 한다.

공장 일을 하며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는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늦었다”고 둘러댄다. 카말은 학교에서 이미 ‘문제아’ 취급을 받은 지 오래다. 카말의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교회 목사님이 학교와 경찰서를 수도 없이 불려다녔다”고 털어놨다.

이들 가족을 돌보고 있는 목사는 “카말이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학교도 자주 빠져서, 수없이 타이르기도 했지만 쉽지 않다”고 걱정했다.

카말은 “한때는 엔지니어가 꿈이었지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환경에서 꿈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이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모든 게 싫다”고 자신을 짓누르는 현실에 무력감을 드러냈다.

방황하는 카말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필리핀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니콜(가명·17·여)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미군클럽에서 1년 넘게 일했다. 무국적자인 그녀는 나이를 속이고 클럽에 들어갔다.

신원 정보가 없어 나이는 그저 말하기 나름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최근 자신이 일하는 클럽이 경찰 단속으로 문을 닫자, 현재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그녀는 “학교에도 다닐 수 없고 취업도 할 수 없는데, 우리가 일할 곳이 이런 곳밖에 더 있겠느냐”며 “돈이라도 벌려면 남자는 정말 고된 막노동판에서, 여자는 이런 곳에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 이마저도 안되면 남의 돈을 빼앗는 일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내 미군기지 주변 유흥업소에는 니콜과 같은 무국적 여성 청소년들이 돈을 벌기 위해 숨어들고 있다.

최근 5년간 법무부의 국내 불법체류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불법체류자는 올해 기준 21만3천565명으로 5년 전보다 27.2% 늘어난 반면, 불법체류자 단속률은 11.1%에서 5.5%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단속률이 떨어진 것은 신원정보를 파악할 수 없는 무국적자의 증가가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무국적자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 지문이나 신원정보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지문 감식이나 DNA 조사 등의 과학수사가 사실상 무의미해 목격자 진술 또는 탐문수사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불법체류자와 무국적자에 처벌유예기간을 주고 자진신고를 유도하는 등 정부의 법률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종우·최재훈·황성규기자 cjh@kyeongin.com



무국적 아이들1
국적없는 아이들 문제는 불법체류자 문제와 직결돼 법과 제도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경기도내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무국적 아이들. /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실태조사조차 않고 ‘방치’
한국 향한 증오 점점 커져
사회가 나서서 보듬어야


국적 없는 아이들 문제는 아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불법체류자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법과 제도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해 9월 경인일보에서 ‘국적 없는 아이들’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한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같은 해 11월 ‘이주 아동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권리옹호부장은 무국적 아동 신분 증명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1세대 미등록 아동이 성장하는 20년간 한국사회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대로 라면 무국적 2~3세대도 1세대와 비슷한 궤적을 밟게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불법체류자 문제의 뇌관이 될 수 있는 국적 없는 아이들에 관한 실태조사조차 없는 국내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아동에 대한 양육과 보호의 책임은 부모뿐 아니라 사회에도 있다. 사회가 아동보호를 위한 제도적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는다는 건 곧 사회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을 보면 ‘이주 아동에게도 출생등록이 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은 발표된 이후 일부 조항을 놓고 찬성과 반대 여론이 들끓으며 논란이 일었지만, 무국적 아동 신분을 증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학계에서는 지난 2008년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 법에서 국적허용 대상을 ‘한국 국민과 결혼해 가족을 이루고 있는 외국인 또는 귀화자’로 한정하고 있어 고용허가제로 이주한 이주여성, 이주 노동자 부부 사이에서 출생한 아동, 외국인 유학생, 무국적 외국인 등을 인권 사각지대에 놓이게 했다는 것이다.

불법체류자 문제를 방치하는 동안 국적없는 아이들은 한국을 향한 증오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취재 도중 부모의 나라 미얀마로 돌아간 까뜨린(8) 양은 떠나기 직전 “한국사람들은 모두 악마 같다. 나중에 반드시 혼내줄 거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종우·최재훈·황성규기자 cj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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