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떼이고, 맞고, 미끼로 배 채우고" 이주 선원들 '짐승의 삶'

IOM 한국대표부·공익법센터 어필, 국회의원회관서 콘퍼런스

필리핀 마닐라의 이주어선원 송출업체가 거리에 내건 광고판. [IOM 한국대표부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작업이 시작되면 쉬지 않고 18시간 동안 일해요.…그들은 손이 빠른 사람을 좋아해요. 손이 느리면 씨×놈이에요.…밥을 먹을 때도 항상 명령해요. 씹지 마라. 그냥 삼켜라. 아무리 급하게 밥을 넘겨도 그들이 말하는 '빨리'보다는 느려요.…일이 끝나도 세수를 하고 이 닦을 시간은 없어요. 어서 누워 담요를 끌어올려요. 그래야 6시간을 잘 수 있거든요.…내가 넝마를 걸치도록 가난해져도 한국, 이 나라에 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을 거예요. 내게 천금을 준다고 해도.…당신이 과부가 되고, 내 아이들이 고아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주는 건 보너스가 아니에요. 매일 소처럼, 개처럼 사는 대가예요."(한국 원양어선을 탔던 베트남 어선원 사이에 구전되는 시)

우리나라 연근해와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출신 이주 선원들의 노동 실태가 공개됐다. 공익법센터 어필과 유엔국제이주기구(IOM)는 2014년 10월부터 2년여에 걸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 '바다에 붙잡히다-한국 어선에서 일하는 이주어선원의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 방안'을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이주어선원 인권 개선을 위한 콘퍼런스'에서 발표했다.

김현권·이용득·박주민 의원실이 주최하고 IOM·어필·선원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가 주관한 이날 콘퍼런스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어필의 대표 김종철 변호사는 "한국 어선에서 일한 70여 명의 이주어선원, 20여 개의 송출입업체, 어선원노조와 시민사회단체, 관련 기관, 각국 정부와 입법부 담당자 등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 등을 조사했다"며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2014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어업생산액은 5조555억 원으로 세계 13위에 해당하며 외국인 선원 비율은 2015년 말 현재 원양어선 69.3%, 20t 이상 연근해 어선 35.5%, 20t 미만 연근해 어선 24.9%에 이른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20t 미만 연근해 어선 선원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적용받지만 그 이상 규모의 어선과 원양어선은 선원법이 적용돼 송출 과정이나 근로 여건 등이 다르다.

인도네시아의 한 송출업체가 한국 어선에서 일할 예비 선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다. [IOM 한국대표부 어필 제공]

이주어선원들의 인권침해 가능성은 모집 단계에서부터 예고돼 있다. 대부분이 가난, 낮은 교육 수준, 송출국에서의 고용 불안에 놓여 있다가 한국 어선을 타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허가받은 송출업체만 이주어선원을 모집할 수 있고 국제 규범에 따라 송출비용을 이주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으나 실제로는 무자격 중개업체가 끼어들고 송출비용을 이주자에게 물려 어선원들은 처음부터 빚을 진 상태에서 배를 타게 된다. 이탈보증금을 물리는 곳도 있어 선원들이 배에서 간부 선원들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권침해 가능성이 커진다.

또 어선원의 상당수가 계약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출국 하루나 이틀 전에 계약서에 서명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배에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여권을 송출업체에 빼앗기고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베트남 선원 B씨는 은행 대출을 받아 중개업체에 소개비로 약 100만 원, 송출업체에 서비스비 약 50만 원과 이탈보증금 약 150만 원을 냈다. 그의 월급은 25만 원이었는데 그나마 처음 4개월은 받지 못했고 8개월 만에 배가 침몰해 보상금 150만 원과 이탈보증금으로 겨우 빚을 갚았다고 한다.

선원들은 하루에 12∼15시간 일했으며 20∼22시간을 일한 사례도 있었다. 이주어선원들의 2016년 월 최저임금은 원양어선 52만 원, 20t 이상 연근해어선 126만5천 원으로 국내 최저임금(135만2천230원)에 못 미칠 뿐 아니라 한국 선원(원양 및 연근해 164만1천 원)과의 격차가 크다. 그나마 적은 임금을 체불하거나 불법 공제하는 사례도 있었다.

생활환경도 극히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양어선 선원들은 화장실이 부족하고 씻을 물도 충분하지 않다고 호소했다. 잠자리나 식사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인도네시아 선원 J씨는 "메뉴는 항상 쌀밥과 반찬 하나, 그리고 김치였다. 반찬은 늘 생선이었고 남은 음식을 다음 날 주기도 했는데 심지어 데워 주지도 않았다"고 호소했고, 베트남 선원 L씨는 "20개월 동안 우리는 남은 물고기 미끼를 음식으로 제공받았다"고 폭로했다.

욕설이나 폭행 사례, 차별, 강제주행 등의 사례도 보고됐다. "해기사들은 피곤하거나 술에 취하면 우리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때린다", "선장에게 인사하지 않았다고 따귀를 맞았고 어떨 때는 발로 차이기도 한다", "물고기 눈을 파는 데 쓰는 대나무가 부러질 때까지 심하게 맞아 3일 내내 등을 대고 누워 있지 못했다", "한국 선원과 달리 작업복이 한 벌밖에 주어지지 않고 바닷물로 씻을 수밖에 없어 늘 소금기에 절은 옷을 입고 지내야 했다", "한국 선원이 내가 자는 틈에 엉덩이를 만지고 강제로 입을 맞추는가 하면 성기를 내 몸에 대기도 했다"

이밖에 20개월 동안 한 번도 정박하지 않은 채 과도한 조업을 하거나 정박할 때 구금하는 사례, 부실한 재해 보상 체계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김 변호사는 "관련 법규정이 부실할 뿐 아니라 그나마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국회, 정부, 관련 기관과 단체 등이 관련 규정 이행, 철저한 관리 감독, 법제도 정비 등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떼갈항에 "충분한 재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광고 문구가 붙어 있다. [IOM 한국대표부 제공]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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